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행복연구소는 ‘덴마크인들의 삶의 방식-행복에 관한 휘게’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됐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공식 등재된 ‘휘게’는 덴마크인들의 행복을 압축한 단어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중순 코펜하겐에 부임했다. 세찬 바람이 불고 찬비가 내리는 코펜하겐 거리는 암울한 겨울의 예고편이었다. 활짝 갠 날씨는 잠시뿐 긴 밤과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들이 이어졌다. 덴마크 지인에게 이런 날씨에 어떻게 행복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덴마크에는 “나쁜 날씨란 없고 나쁜 복장만 있다”고 답한다. 다섯 달이 넘는 긴 겨울 동안 덴마크인들은 촛불을 밝히고 담요를 둘러쓰고 가족·친지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휘게의 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덴마크에 대한 이러한 호평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바이킹의 원조로 알려진 덴마크의 역사는 영욕으로 점철돼 있다. 이들의 근대사는 북유럽의 거대 왕국이 영토와 지배력을 상실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발틱해와 북해를 오가는 선박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고 바이킹의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로 세계적 해양국가로 부상한 덴마크는 18~19세기 주변 국가들과의 잦은 전쟁에 패하면서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대재앙을 맞았다.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역경을 극복하려는 덴마크 선각자들의 지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는 구호 아래 덴마크인들은 생존을 위한 운동을 펼쳤다. 민중학교와 협동조합 설립, 농축산업을 위한 토지 개혁 등이 국민들의 참여 속에 추진돼 덴마크는 북유럽 농업 강국으로 다시 부상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공민학교 설립자 그룬트비 목사, 부흥운동가 엔리코 달가스 등이 이 시대를 이끈 덴마크 인물들이다.
한편 원유 수입의 90%를 중동에 의존하던 덴마크는 지난 1973년 제1차 오일 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역학의 선구자 닐스 보어를 비롯해 우수 인력을 보유한 덴마크는 원전 건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1973년부터 불붙은 원전 도입 찬반 논의에 정치권·학계 및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정부는 발전소와 폐기물 처분 후보지를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단체 중심의 반대 세력에 정치권이 가세했고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반대 세력이 우세를 점하게 됐다. 1985년 3월 덴마크 의회는 격론 끝에 79대67의 표결로 원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음해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덴마크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줬다. 덴마크인들은 대안으로 바람이 많은 덴마크의 환경을 이용하는 풍력을 도입했다. 당시 풍력 기술은 보잘것없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기업의 기술 개발 노력이 결부돼 40여년이 지난 지금 덴마크는 풍력 발전의 세계 선두주자가 됐다. 덴마크는 오는 2020년까지 전기 소비량의 50%를 풍력 발전으로 공급할 계획이며 재생에너지 사용을 원하는 애플사와 페이스북사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고용 창출을 꾀하고 있다.
덴마크인들은 사회와 국가에 돈독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이 내는 세금이 바로 복지사회의 밑거름이 되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신뢰 때문이다. 모범적인 복지국가 모델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덴마크이지만 고령사회, 이민과 사회 통합, 사이버 안보 위협 등 새로운 난제를 안고 있다. 긴 안목에서 국민 통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길을 모색해온 덴마크가 어떠한 창의적 해법을 내놓을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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