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장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주라는 지시를 박근혜(사진) 전 대통령에게서 받았고 또 입단속도 엄중히 시켰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뇌물 혐의 무죄를 다투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는 크게 불리한 증언이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발언이다. 그는 과거 최씨 측근으로 지난 2015년 8월 삼성전자와 최씨 소유 코어스포츠 간 승마 지원용역 계약 체결에 관여했다. 그는 앞선 재판에서 최씨가 “이 부회장이 VIP를 만났을 때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며 화를 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VIP는 박 전 대통령을 의미한다.
박 전 전무가 그간 숨겨둔 폭탄 증언을 내놓은 것은 이날 오후6시10분이다. 그는 “내가 2015년 12월 한국에 돌아와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당시 대한승마협회장)을 만나 ‘독일 일을 잘 챙겨 보라’ 했더니 그가 ‘(독일 일은) VIP가 말을 사주라 해서 한 것인데 세상에 알려지면 탄핵감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또 ‘앞으로 입조심 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일정이 빡빡하지만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만나서 점심이든 저녁이든 하자’고 말했다는 게 박 전 전무의 증언이다. 그는 “관리받는 느낌이 들어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라고 박 전 사장에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독일 일’은 삼성과 코어스포츠의 거래를 뜻한다.
이날 증언은 박 전 전무가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는 물론 앞선 국정농단 재판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지금까지 삼성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서 ‘올림픽 승마선수 지원’을 지시받았을 뿐 정씨 지원을 콕 집어 지시받은 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에게 말을 사준 것도 아니고 삼성전자 소유의 말을 빌려줬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날 박 전 전무는 “삼성과 코어스포츠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오는 2018년이면 삼성이 말을 다시 가져갈 것 같아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박 전 사장이 ‘말은 관심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대가로 삼성의 정씨 승마 지원을 요구한 혐의(뇌물수수)를 받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유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두 사람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이미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에도 불리하다.
한편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재판이 끝나고 기자와 만나 “박 전 전무의 증언은 다른 증인들과도 충돌할 뿐 아니라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박 전 전무의 증언은 일관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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