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편에 나오는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웅녀에게 준 음식은 ‘쑥과 마늘’이 아니라 ‘쑥과 무릇’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은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단군 시대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마늘이 없었다”며 마늘로 알려진 식물은 무릇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국유사에 이 대목은 ‘산이십매’(蒜二十枚)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 ‘산’(蒜)의 의미는 마늘·달래다.
박 위원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은 마늘과 달래가 모두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명나라 학자 이시진이 엮은 책인 ‘본초강목’을 인용하며 “마늘은 서한 시대에 서역에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본초강목에는 “집에서 심는 산(蒜)은 두 가지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작으면서 씨가 적고 몹시 매운 것이 산(蒜)인데, 이것은 소산(小蒜)이다. 뿌리와 줄기가 크면서 씨가 많고 매운맛이 나면서 단맛이 도는 것은 호(葫)인데, 이것이 대산(大蒜)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호는 마늘, 산은 무릇이라는 것이 박 위원의 주장이다.
박 위원은 그러면서 “달래는 매운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소산이라고 할 수 없다”며 “무릇은 큰 상수리 열매 정도 크기로, 무척 맵고 아려서 날로 먹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어 “1946년 사서연역회(史書衍譯會)가 삼국유사의 첫 번역본을 내면서 ‘산’(蒜)을 마늘로 옮긴 뒤 수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지금이라도 마늘은 무릇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인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는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늘 신웅(神雄·환웅)께 빌면서 인간이 되기를 발원했다. 신웅은 신령스런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매를 주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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