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인 9일 태국 방콕의 쭐랄롱꼰대. 한국어 파견교사 윤효진(24)씨가 슬라이드에 한 여성의 사진을 띄우고는 학생들에게 “누구의 여자친구입니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일제히 답했다. “송중기의 여자친구입니다.”
윤씨는 이어 다양한 한국어 예문을 제시하며 반복학습에 들어갔다. “까녹펀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아리야의 졸업식은 언제입니까.”
태국 중고등학생용 한국어 교과서 출판을 기념해 열린 한국어 교육 시연회의 한 장면이다. 이날 윤씨는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로 학생들의 관심을 끈 뒤 소유격 ‘~의’의 용법에 대해 강의했다. 태국어 ‘컹’과 같은 의미인 ‘의’는 이날 출간된 한국어 교과서 1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시연자로 나선 현지 한국어 교사 타몬완씨는 회화를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남성이 혼자 식사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준 뒤 ‘지금 뭐 하는 중입니까’라는 문장에 대해 설명했다.
태국 중고등학생용 한국어 교과서는 이날 제1권 출간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총 6권이 발간된다. 한국어 발음·문법·어휘 등 기본적 내용뿐 아니라 한국과 태국의 문화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도 담길 예정이다. ‘불닭볶음면’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음식도 교과서에 소개된다.
태국 정부는 한류 열풍이 몰아친 지난 2008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했다. 정식 한국어 교과서가 없어 교사들이 애먹고 있다는 지적에 2015년부터 교과서 제작에 착수해 올해 결실을 봤다. 지난해에는 태국 교육부가 한국어를 대학 입학시험 제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해 개발에 한층 속도가 붙었다. 한국어를 대입 과목으로 채택한 나라는 미국·호주·프랑스·일본에 이어 태국이 다섯 번째다.
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중고등학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0년 30개교, 3,000명에서 올해 150개교, 3만여명으로 불었다. 한국어와 동시에 제2외국어로 채택된 스페인어의 경우 10년 동안 7개교, 1,300여명에 머물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학교가 아닌 사설학원 등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수요를 감안하면 태국 내 한국어 구사자는 십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치르는 응시자 수도 올해 4,200명을 넘어섰다.
윤소영 태국한국교육원 원장은 “한국어 교과서 출간으로 태국 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태국을 발판 삼아 다른 동남아 국가에도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콕=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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