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통상임금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던 ‘고정성’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보여주는 판결을 내려 앞으로 진행될 통상임금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고정성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성실의 원칙’과 함께 불분명한 기준 때문에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경제연구원이 기업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정성 충족 여부(28.6%)는 신의칙 인정 여부(65.7%)에 이어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으로 꼽힐 정도로 소송에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엘리베이터 생산·설치업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노동자인 김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민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티센크루프는 단체협약에 따라 짝수 월과 설·추석에 기본급과 수당의 100%씩인 상여금(총 800%)을 지급했다. 다만 통상임금 산정에서 해당 상여금을 제외했다. 하지만 김씨는 “회사가 지급한 상여금은 정기·일률·고정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퇴직금 산정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1·2심 재판부는 “일정 구간을 기준으로 몇 회에 나눠 고정적인 금액을 지급하기로 했다면 비록 지급일에 재직해야 한다는 요건이 있더라도 소정 근로에 대한 대가성이 인정되는 한 고정성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 사건 상여금은 지급기준일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으로서 소정 근로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근로자가 특정 시점이 도래하기 전 퇴직하면 해당 임금을 지급 받지 못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서 요구되는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3년 대법원이 제시한 통상임금 전제 가운데 고정성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해 통상임금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본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따른 판결인 셈이다.
같은 기업이라도 단체협약과 임금 규정에 따라 심급별로 엇갈린 해석을 내놓는 판결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상여금 일할 계산’이나 ‘재직자에게만 지급’ 등의 조건이 붙어도 종종 고정성을 인정해주던 기존 하급심 판단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한 판결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하급심 판결은 15일 이상 근무해야만 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는 추가 조건에 따라 고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현대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결과와도 배치된다. 또 강원랜드는 ‘15일 이상 근무한 직원만 상여금을 지급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1심은 고정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봤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상고심은 2심과 같이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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