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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세인트헬레나섬





1501년 포르투갈 항해가 주앙 다 노바가 이끄는 원정대는 아시아를 향해 바닷길을 나섰다. 원정대는 대서양을 통과한 뒤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1년여 만에 인도에 도착했다. 여기서 사들인 향신료 등을 싣고 귀국길에 오른 원정대는 1502년 5월21일 남대서양에서 무인도 하나를 발견했다. 다 노바는 이날이 마침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를 기리는 축일인 점을 감안해 섬 이름을 ‘세인트헬레나’로 지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섬에서 튼튼한 목재와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었고 이후 이 섬은 수에즈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이렇게 포르투갈령이 된 세인트헬레나섬은 유럽 열강이 제해권을 다투는 와중에 네덜란드령으로 바뀌었다가 1673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로 넘어갔다. 1834년에는 영국 국왕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세인트헬레나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배당하면서부터다.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의 신병처리를 일임 받은 영국은 1815년 10월 나폴레옹의 망명요청을 거부하고 세인트헬레나섬에 가둬버렸다. 나폴레옹 유배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은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폴레옹이 다시는 재기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섬은 앙골라 서부 해안으로부터 2,800㎞나 떨어져 있다. 지금도 뱃길로 여기에 가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꼬박 닷새가 걸린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사망할 때까지 독서를 하거나 측근이자 프랑스 역사가인 에마뉘엘 드 라 카세에게 회상록을 구술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산봉우리를 깎고 계곡을 메워 길이 1,950m짜리 활주로를 갖춘 공항이 건설된 것이다. 하늘길이 열리면서 이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세인트헬레나까지의 여행시간은 6시간으로 줄었다. 나폴레옹이 유배를 당한 지 무려 200년 만의 고립 탈출이다. 만일 지금 나폴레옹이 살아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또다시 재기를 꿈꿀까.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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