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스티븐 킹 같은 추리소설 작가가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엔 왜 필립 K.딕 같은 SF소설 작가가 안 나오는 것일까.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이 두 가지 질문을 붙잡고 10년 넘게 장르문학의 영토를 야금야금 넓혀 오고 있다. 어린 시절 무협지에 심취했고 대학 시절 직접 단편소설을 써보기도 했지만 이내 창작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난 2005년 북스피어를 설립한 이래 미스터리 스릴러와 추리·SF 등 장르소설만 120종을 펴냈다. 미야베 미유키, 마쓰모토 세이초, 김탁환, 듀나의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국내 독자들을 만났다.
최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김 대표는 유독 ‘쏠림 현상’이 심한 국내 출판계의 분위기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한국 출판계는 외국과 달리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는 작가가 돈도 많이 번다”며 “신경숙·김영하·김훈처럼 이른바 본격 문학을 한다는 소설가의 작품이 잘 팔리기까지 하니 누가 돈도 안 되고 평가도 못 받는 추리 소설을 쓰려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난해하기로 소문 난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받자마자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을 보면 꼭 그의 말이 허언(虛言)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또 “한국 문단에선 장르 소설을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하면 한심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며 “순수 문학에 지나치게 경도된 분위기 탓에 장르 문학은 제대로 된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100만부를 판매하는 작가 1명보다 ‘10만부 작가 10명’이 문단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훨씬 소중하다”며 “‘100만부 작가’만 칭송하는 한국 문단의 분위기는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풍토와도 관련이 있다”고 꼬집었다.
획일화된 한국 문단에 쓴소리를 쏟아내던 김 대표는 장르 소설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그는 “공모전 심사를 나가 보면 전체적으로 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쓴 소설뿐”이라며 “젊은 지망생들이 관습적인 클리셰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클리셰를 완벽히 숙지한 뒤 그걸 자신만의 관점과 비전으로 살짝 비틀 때 비로소 창조적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그는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한강 유람선을 빌려 장강명·김탁환 등의 작가와 함께 ‘장르문학 부흥회’를 열고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책 표지를 감추고 도서를 판매하는 ‘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무협지를 읽고 있으면 ‘이따위 책을 보느냐’며 빼앗아 가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생각난다”며 “문화라는 건 ‘유희 정신’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책을 파는 것은 나의 일이지만 이 업무를 놀이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지금 한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떼거리 유럽 서점 유랑단’을 모집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는 유랑단 참가를 신청한 일반인들과 함께 오는 11월3일 유럽으로 떠난다. 9박 11일 동안 네덜란드·독일·룩셈부르크·프랑스·스위스 등 5개국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김 대표는 “서점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공연도 즐기며 유럽의 자유로운 문화적 향취를 맛볼 것”이라며 “2차 유랑단, 3차 유랑단을 모아 매년 한 차례씩 여행길에 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 문단에서 가장 각광 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인 장강명과 차기작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도 귀띔했다. 그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괴수가 나오는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영업상 비밀”이라며 웃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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