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이 발표됐지만 예상대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개혁은 노동계의 희생과 양보만을 요구하는 정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서 노동개혁은 사라진 개념이 됐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특수형태 고용종사자들에 대한 노동권의 확대 등 일자리 로드맵에 담겨 있는 대부분 정책들은 노동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노동비용을 상승시키는 정책들이기 때문에 기업의 숨통을 열어주는 구조개혁 방안이 동시에 강구되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집권 초기에는 대선 공약 이행이라는 책임에만 충실하면 되지만 1~2년 지나고 일자리 로드맵의 성과를 따져보는 시점에 이르면 정부도 노동개혁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설파해왔던 이상헌 박사를 비롯한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자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한 논의와 정책 구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노동개혁에 대한 요구가 당위론에 치우치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치공세로 치달아 실사구시의 해법 모색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이때 참고할 만한 자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혁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개혁사례 보고서다. 여기에는 10여개 국가가 추진했던 노동과 복지, 교육 개혁의 사례를 분석해 도출해낸 성공과 실패의 교훈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개혁의 대상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개혁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모든 개혁은 기득권 내려놓기와 이해관계의 재편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혁 과정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개혁이 좌절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지난 20년의 노동개혁 경험을 되짚어볼 때 우리나라만큼 이런 교훈에 역행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특히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사전에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고 목적에 맞지 않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고를 쉽게 하는 행정지침을 사회적 타협을 통해 추진하겠다며 일방적으로 노동계를 몰아세운 것이나 정치적 지지가 확보되지도 않았는데 노동 유연성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정부를 공격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혁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과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노동조합 개혁에 나설 때나 네덜란드의 빔 콕 총리가 노동의 유연 안정성 개혁을 추진할 때, 그리고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하르츠 개혁에 나설 때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추진할 정책목표를 분명히 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개혁에 매달렸다.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제시한 노동정책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보호, 격차 해소 등 노동계 선물 주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노동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 문제를 풀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고용 유연화를 힘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은 제로라고 본다. 차라리 노동개혁의 목표를 임금개혁으로 한정하고 노사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일자리 로드맵상의 비정규직 줄이기나 1만원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르는 노동비용 상승을 모두 기업이 부담하는 구조로는 로드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비용분담에 대한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이 있어야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노동계도 고용이 위협받지 않는 타협에는 충분히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과 민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공정한 임금격차뿐 아니라 근속연수에 따른 과도한 임금격차 전반을 개편하는 임금 대개혁으로 나아가면 노동개혁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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