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50년께 지중해 연안의 페니키아(Phoenicia)를 점령한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의 염료 기술에 매료됐다. 뿔 고동으로 아름다운 자줏빛 색소를 만들어냈던 것. 자주색 염료에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지 그 나라 이름을 아예 ‘자주색 나라’라는 의미인 페니키아로 짓고 지역민은 포이니키스(자주색 사람)로 불렀을 정도다.
페니키아산 뿔 고동의 분비물은 햇빛·공기에 노출되면 보라색으로 변한다. 기원전 1,500년께부터 페니키아인들은 이 분비물을 염색에 이용할 줄 알았다. 특히 뿔 고동이 해안도시 티레(Tyre)에서 주로 자생했기 때문에 자줏빛으로 염색된 색깔은 모두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 또는 페니키아 퍼플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 뿔 고동은 희귀해 자주색 염료 가루는 같은 무게의 은과 교환될 정도로 비쌌다.
자주색이 고귀한 색으로 인식된 것은 이런 희소성에다 비싼 가격이 작용했지 싶다. 자줏빛으로 염색된 옷은 황제나 귀족들만 입을 수 있어 로열 퍼플(Royal purple)이라고도 한다. 공화정 로마 시대에는 집정관이나 전쟁에 이기고 개선하는 장군들만이 자주색 망토를 착용할 수 있었다. 제정 로마 이후 자주색은 황제 전용이 된다. 이 전통은 로마 멸망 이후 중세에도 이어져 자주색은 왕이나 귀족의 색으로 인식돼왔다.
우리나라 백제 시대에도 자주색은 지배층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던 것 같다. 백제에는 16개 품계가 있었는데 좌평을 비롯한 6품까지만 자주색 관복을 입을 수 있었다. 7~12품까지는 붉은색, 그 이하는 푸른색인 것을 보면 자주색은 고관대작들의 전유물이었던 듯하다. 특이하게 예술가가 귀족 대우를 받아 자주색 옷을 입었다. 중국인들도 자주색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중국의 자존심 중 하나인 자금성에 자줏빛을 뜻하는 자(紫)가 들어가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제 열린 19차 당 대회 개막식에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나와 해석이 분분하다. 호사가들은 시 주석이 황제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그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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