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한 청년이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명성황후 시해범을 맨 손으로 때려 죽이고 스스로 잡혀 들어간 이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였다. 김창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 이름. 영화는 실존했던 독립운동가의 강렬한 투쟁의 순간이 아닌 그 시작점에 놓인 한 청년의 변화를 그린다.
19일 개봉한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는 189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청년 김창수가 인천 감옥소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 영화.
조진웅은 암흑의 시대, 감옥소에서 탄생한 대장 김창수로 분했다. 특히 역사 속 위인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 아닌, 위대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알을 깨고 나가는 ‘김창수’의 출발점에서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조진웅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음엔 백범 김구 역할이 너무나 크고 부담스러워 출연을 고사했다.”고 털어놨다. “도저히 김구 할아버지 성정을 못 쫓아갈 것 같았다.”며 “나는 위인이 아닌 그분들의 발자취를 재현해내는 광대일 뿐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전 국민이 다 아는 위인을 연기하는 일에는 엄청난 부담감이 따랐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약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창수가 감옥 안 갖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으로 성장하듯 조진웅 역시 시나리오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면서 진심을 읽게 됐다고 했다.
“배우로서 이 이야기를 감당하고 고민 없이 ‘그래. 내가 할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화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 배우가 캐릭터가 입기 불편하면 포기하는 것도 생긴다. 그럼 감독님과 조율해서 바꾸기도 하는데 이건 그게 안 되는 실존 인물이다. 규격화된 사이즈에 내 몸을 맞춰 들어가야 한다. 조진웅이 살아온 성정 그걸 뜯어고쳐야 한다는 점이 고사를 했던 이유이다. ”
그러나 곧 그는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가슴 속으론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란 생각도 있었다는 말로 고민과 고뇌의 시간을 들려줬다.
“시나리오를 계속 읽어보니 단순히 위인의 이야기가 아닌 더 많은 의미가 있더라. 위인을 연기한다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체감했다. 위인들의 그 결단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란 질문을 가지고 많은 자료도 찾아보고 그 옷을 입어보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영화에 보면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다’라는 대사가 있다. 그 의미 역시 와 닿았다. ”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며 감옥 안에서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던 청년 ‘김창수’는 자신보다 더 억울하고 힘이 없어 그저 고통을 당해내고 견뎌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감옥 안의 조선인들을 보며 해야 할 일을 점점 깨우치기 시작한다. 바깥 세상보다 더 참혹한 감옥살이를 견디는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하는 ‘김창수’, 스스로 변하면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점차 변모해가는 동료 죄수들의 모습은 조진웅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긴다. 그렇기에 그는 “자꾸만 생각할수록 결국 ‘이번엔 내 차례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명량’(2014년) 작업할 때 최민식 선배님을 옆에서 보면서, 이순신을 향한 그의 치열한 고뇌와 고통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구나를 확실히 알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제 내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지 않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장 김창수로 분한 조진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나 김창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국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지를 가진 탈옥수들이 있어서 김구 선생님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누가 어떻게 영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소통하며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런 점에서 조진웅의 삶도 가치 있게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도닥거려주기도 했다.“
‘대장 김창수’에만 올인한 조진웅은 촬영장을 떠나지 않은 채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선배와 후배들 사이를 조율한 반장 역할을 맡은 조진웅은 “‘대장 김창수’를 통해 얻은 게 많다” 고 했다.
“김구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두 발을 뻗고 살고 있는데, 후손들이 나라를 잘못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저부터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올 곧게 생각하시는 대로 하시라. 후손들은 꼭 따라가겠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대장 김창수’는 김구 선생의 후손들이 만족스러워 한 영화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의 첫째 손자 김진은 “영화로 만들어지며 역사가 왜곡될까 걱정됐다. 논픽션이지만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좋았다”고 솔직한 감상평을 전했다. 또한 “62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간 ‘김창수’가 헐벗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기간을 잘 표현했다.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다”고 조진웅의 연기에 대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조진웅 역시 작품을 준비하며 실제로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 선생의 묘소에 방문했던 일화를 전했다.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 할아버지의 생묘에 가고 있어요. 영화 촬영하면서도 갔고, 시사회를 앞두고도 갔어요.최근에 가선 영화 잘 되게 해달라고 인사드리고 왔다. ‘제가 할아버지를 연기한 후손입니다. 가끔 찾아와서 귀찮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칭얼대도 받아주세요’란 얘기도 하고 왔어요. 마음 편하게 찾아가서 속 마음을 이야기 할 분이 생긴 것 같아 좋습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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