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원회가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하면서 원전 수출 전선에 끼였던 먹구름이 걷혔다. 정부는 공론화위의 결과와는 별개로 탈(脫)원전 정책 기조는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원전 기술의 폄훼로까지 불거졌던 공론화가 건설 재개로 결론 나면서 급한 불은 꺼졌다는 평가다.
이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권고에 따라 한국은 다시 원전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는 원전의 두뇌에 해당하는 계측 제어 시스템과 냉각재 펌프, 원전 설계 핵심 코드 등 3대 핵심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도 받아 기술적 측면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상황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로 한국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실적(track record)’을 이어갈 수 있어 ‘국내 리스크’라는 변수도 사라졌다.
이번 공론화위 결과로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한발 후퇴한 만큼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입장에서는 원전수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열린 지난 10일 원전수출전략협의회에서 도입국과 문재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비롯해 ‘핫라인’ 구성과 지속적인 장관급 면담 등을 요구했다. 정부는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라 원전 수출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일본이 원자력 수주 시장에서 뒤처지면서 경쟁자가 러시아와 중국으로 좁혀진 점은 향후 수주전의 전망을 밝게 한다. 원전산업수출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의 경우 에너지 안보 의존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과다 수주로 인한 프로젝트 차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중국 역시 품질 및 안전성에 대해 국제적 신뢰도가 낮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흔히 자유민주국가에서 한국만이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의 원전을 원치 않는 곳을 공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원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는 점도 원전 수출에 희망적이다. 영국과 체코·사우디아라비아 등 3곳은 우리의 원전사업 참여를 직접 타진할 정도다. 영국은 21조원 규모로 1,400㎿급 원전 3기를 건설하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전은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개발사인 누젠컨소시엄의 지분 인수와 영국 정부와의 사업이행계획 실무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2017년 말이나 2018년 도입 노형을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에 1,000㎿급 원전 2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까지 투자 모델을 확정하고 2019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지난 18일 방한 중인 페트르 크르스 체코 원자력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은 한수원 고리 본부를 돌아본 뒤 “체코의 규제 요건까지 적합하게 잘 반영돼 안전하게 설계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우디도 2018년 입찰제의서를 제출한 5개국 중 3개국을 선정하고 사업계획서를 평가한 뒤 2019년 최종 결정에 나선다.
최근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까지 받은 한국으로서는 정부가 전방위적 지원만 한다면 향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수출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제대로 나선 적은 없다”며 “공론화위 결과에 온 국민이 승복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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