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북부 2개 주가 재정 통제권을 비롯한 핵심 정책에 대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를 계기로 다른 지역도 앞다퉈 자치권 확대 요구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와 베네치아, 베로나 등이 포함된 베네토 주는 22일(현지시간) 재정 통제권과 치안, 이민, 교육, 보건, 환경 등 핵심 행정에 있어 더 많은 지역 권한이 필요한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나란히 실시했다. 투표가 밤 11시에 마감된 가운데 투표율이 50%를 넘어야 주민투표의 효력이 인정되는 베네토 주의 경우 최종 투표율이 57∼61%로 예상돼 참여가 뜨거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투표율 규정이 없는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 최종 투표율은 40% 안팎으로 나올 것으로 보여, 로베르토 마로니 주지사가 목표로 밝힌 34%를 훌쩍 뛰어넘었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압도적인 지지로 주민투표가 통과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출구 조사 결과 두 지역 모두 찬성 응답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내세워 지역에서 거두는 세수를 중앙 정부에 덜 보내는 방안을 비롯해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협상을 중앙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는 지난 주 “주민투표가 통과될 경우 연말께 정부와 협상을 개시해, 내년 총선 전에 자치권 확대 협상을 마무리하길 원한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GDP의 각각 20%, 10%를 기여하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는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정당 북부동맹(LN) 소속 주지사의 통치를 받고 있는 곳이다. LN은 창당 초기 지향점인 북부의 분리 독립이라는 당론은 오래 전에 폐기했으나 부유한 북부가 낙후된 남부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 아래 끊임없이 자치권 강화를 요구해왔다.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 중앙 정부에서 공공 지출 등의 명목으로 돌려받는 돈에 비해 현재 연간 약 540억 유로, 베네토 주는 약 155억 유로를 더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지렛대 삼아 중앙 정부에 대한 이 같은 기여분을 약 절반으로 줄이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GDP의 130%를 상회하는 막대한 부채로 신음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로서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주의 이 같은 요구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 전망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인 구속력 없이 단순히 권고적인 성격만을 띄고 있지만 타 지역으로 확산되며 중앙 정부의 권위 약화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구리아 주가 현재 자치권 확대를 꾀하는 비슷한 주민투표를 검토하고 있고, 산업이 발달한 부유한 북부 지역 에밀리아 로마냐 주 역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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