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가정폭력·살인 등 범죄 피해자를 연계하는 임시숙소제도가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범죄에 노출돼 마음이 불안정한 피해자가 관리인력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 혼자 남는 탓이다. 경찰은 중대범죄를 겪은 피해자가 찾아오면 일반 숙박업소에 연계하는 ‘임시숙소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투숙시킨 뒤 곧바로 철수하는 사례가 많아 자살·추락·침입 등 긴급사태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술에 취해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 했던 A씨도 홀로 방에 있다가 참사를 당했다. 유족들은 “차라리 지구대 구석에 뒀더라면 아침에 데리러 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주취자를 굳이 차에 태워 모텔에 두고 온 게 화근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전문인력이 상주하는 24시간 피해자보호시설이나 병원에 피해자를 우선 연계해야 한다. 단순 주취자나 부부싸움을 한 경우는 임시숙소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으며 보호시설 및 가족·친지에게 연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임시숙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A씨를 담당한 경찰관은 보호시설에 문의하지 않고 A씨를 곧장 모텔로 보냈다. 그 시각 창원에 있는 여성가족부 지정 피해자보호시설 2곳은 24시간 운영 중이었다.
전문가들은 경찰 보호조치의 틈새를 막으려면 가급적 민간 보호시설 및 지역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취지는 좋았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역효과가 발생한 사례”라며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임시숙소를 이용해야 한다면 여경을 배치하거나 지역 시설 전문가를 부르는 등 민간단체와 협력해 최소한의 감독인원이라도 두는 편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창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이외의 업무를 어중간하게 떠맡다 보면 이렇게 틈새가 생길 수 있다”며 “비경찰 업무는 여성단체와 지역사회단체로 완전히 이관하는 편이 업무효율과 안전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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