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50·사진) 시인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혼잣말로 가득하다. 작가의 시적 화자는 ‘비밀 하나를 이야기해야겠다// 누군가 올 거라는 가정하에/ 가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는 비밀 하나를’이라고 읊조리는가 하면 ‘이제껏 해오던 말이 아닌 다른 말로 말을 걸면 끊어져/ 닿을 수 없는 사람도 이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외로움에 떤다. 눈치 어두운 독자가 미처 간파하지 못할까 봐 이병률은 ‘시인의 말’에도 또박또박 적어 놓았다. “마음속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을 들으려고 가는 중입니다”라고. 시집을 덮자마자 궁금증이 솟았다. 독자를 향해 시집을 내놓으면서 ‘혼잣말’이라니.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 여행 작가로도 유명한 이병률이 지난달 출간한 다섯 번째 시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시인은 “혼잣말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자기 연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벌써 시인으로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아직까지 쓸 거리가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 개인을 들여다보면 짠한 마음이 우선 들어요. 사람들이 내 시를 읽지 않는다 해도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혼잣말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요. 시가 사랑을 많이 받는 시대, 시가 잘 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런 연민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겠지요.”
시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자기 연민이라는 말을 ‘방어막’으로 바꿔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마이크를 잡고 대중을 향해 고래고래 목청 높인 게 아니라고, 그저 조용히 혼잣말을 되뇌었을 뿐이라고 보호막을 쳐야 상처도 그만큼 덜 입을 테니까.
시집 속 ‘이별의 원심력’이라는 작품에 들어가 있는 한 문장이자 시집 표제이기도 한 ‘바다는 잘 있습니다’ 역시 시인의 혼잣말에서 비롯됐단다. “시집을 내기 직전 제주도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갔는데 ‘바다는 잘 있습니다’ 라는 혼잣말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전했다.
시인은 ‘힘겨운 혼잣말’이라는 측면에서 시와 사랑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의 출처’라는 시에는 ‘산 하나를 다 파내거나/ 산 하나를 쓰다 버리는 것/ 사랑이라 한다’고 적혀 있다. 이렇게 시와 사랑을 동전의 양면처럼 포개놓은 작가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사랑하는 타인과의 내밀한 소통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는 바람을 슬쩍 내비쳤다. 이병률은 “시집의 제목이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엽서의 마지막 문장이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바다가 잘 있다는 것은 ‘나는 잘 있다’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인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안부를 묻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가 대접받지 못한 시대가 이어지더라도 변하지 않겠다는 말을 마지막 다짐처럼 내뱉었다. “앞으로도 모진 바람이 불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겠지요. 그래도 저라는 사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람과 파도가 저를 집어삼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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