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뮤지컬 시장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지만 런던은 2조7,000억~2조9,000억원에 달합니다. 당장은 6배나 차이가 나지만 최근 한국의 문화예술 수요 증가나 문화공간 확대 추세를 보면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대학생 여러분은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미래를 찾기 바랍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24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여대에서 열린 ‘대학생을 위한 CEO 특강’ 강연자로 나서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인생 선배이자 한국 문화콘텐츠 시장의 새 길을 연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70여 분간 풀어냈다.
서울경제신문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서 그는 21세기를 ‘꿈의 시대’로 정의하며 21세기의 주역인 20대가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 대표는 “꿈의 사회는 스토리가 제품이나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며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꿈의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게 박 대표의 믿음이다. 특히 연극이나 무용·전통공연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길러줄 수 있는 장이다. 박 대표는 “한국의 뮤지컬 무대 메커니즘과 배우의 기량은 런던 웨스트엔드나 뉴욕 브로드웨이 수준이라 완벽한 무대를 즐기기에는 적합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며 “뮤지컬 한 편 가격으로 연극이나 무용·전통공연을 다섯 편씩 보면 나만의 콘텐츠 곳간을 채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예술대 무용과에 입학했던 시절을 회고하기도 했다. 교육자와 공무원이 대부분이던 집안에서 예술인을 꿈꾸던 그는 이단아였다. “부모님이 탐탁지 않아 했던 탓에 학비를 직접 벌어 학업을 마쳐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때문에 꿈을 접지 않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밀어붙였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변혁의 시기인 지금은 부모 세대가 진로를 결정해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고 여러분 스스로 원하는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꿈의 실현 과정을 작품 제작에 빗대기도 했다. 보통 한 편의 뮤지컬이 탄생하기까지 대략의 작품 구성을 볼 수 있는 시놉시스, 그 뒤 제작기획서, 희곡이 만들어지고 이후에는 쇼케이스·워크숍 등을 통해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친다. 박 대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의 열정·인맥 등과 버무려져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각자가 가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한데 여기서 반드시 필요한 게 끈기와 노력”이라며 “신은 너무 바빠서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까지 기회를 줄 여력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시의적절하게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신시뮤지컬컴퍼니를 이끌면서 대형 라이선스 공연인 ‘렌트’를 국내에 선보이게 됐는데 자금 여력이 빠듯했던 그에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후원하고 투자해줬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자에게는 늘 기회와 귀인이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신시컴퍼니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에게 박 대표가 주로 설파하는 ‘체력안배론’ 역시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가 뮤지컬 무대에 데뷔시킨 가수 인순이·옥주현·아이비 등은 내로라하는 가창력의 소유자들이지만 공연 기간 내내 매일 2~3시간 10여곡의 넘버를 소화해야 하는 뮤지컬 무대에서는 체력 안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박 대표는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체력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안배하고 짧은 시간에 집중도와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훈련을 받는다”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다음달말 개막을 앞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는 9~10세에 불과한 다섯 명의 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 영국 현지에서 온 스태프들과 함께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박 대표가 중점을 둔 것은 끈기와 인내력이었다. 박 대표는 “극 중 빌리는 발레 동작과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지만 선발한 아이들은 무용도 노래도 전혀 모르는 어린이들이었다”며 “2년간의 고강도 훈련을 통해 지금은 완벽한 빌리가 됐는데 이 아이들을 이끈 힘은 바로 끈기와 인내력이었다”고 소개했다.
내년이면 신시컴퍼니 설립 30주년, 그가 신시를 이끈 지 햇수로 20년을 맞는다. 박 대표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실패하고, 가장 많이 성공해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그 스스로는 실패한 인생을 산 적이 없다. 그가 내놓은 작품에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났을 뿐이다. 박 대표는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며 실패 이후 다시 도전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 자리는 없다는 신념 하나로 끊임없이 도전했고 이 과정에서 맷집이 생겼다”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인내와 끈기라는 무기가 생길 것”이라며 격려의 미소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약력 △1963년 전라남도 해남 △1983년 서울예술대 무용과 △2003년 단국대 연극영화과 학사 △2008년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석사 △1987년 극단 신시 창립단원 △1999년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 △2004∼2006년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초대회장 △2007~2009년 제2대 서울연극협회 회장 △2009~2010년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 △201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2012년 옥관문화훈장 △2015년~ 한국뮤지컬협회 제6대 이사장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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