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채비’(감독 조영준)가 26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공개됐다.
‘채비’는 일곱 살 같은 서른 살 아들 인규(김성균)를 24시간 특별 케어하는 잔소리꾼 엄마(고두심)가 이별의 순간을 앞두고 홀로 남을 아들을 위해 특별한 체크 리스트를 채워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첫 장편영화를 세상에 내보이게 된 조영준 감독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50세 지적장애 아들을 돌보는 80세 노모가 비관이 아닌 긍정의 눈빛을 한 것을 보고 이를 바탕으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감독의 의도는 부드럽고 착한 시선으로 반영됐다. ‘채비’에는 마냥 못된 악역도 없고 자극적인 갈등도 없으며 억지스러운 전개도 없다. 오히려 다소 ‘뻔하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으로 흘러간다. 잔잔하고 소소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영화의 초반을 이루는 것은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엄마의 걱정이다. 당장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들은 방바닥에 누워 “엄마 밥”이라고만 외치면 밥상이 뚝딱 차려져 나오는 줄 안다. 버스도 혼자 못 탄다.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
인간이기에 나약하지만 엄마로서 강인한 애순은 고두심의 연기를 입어 비로소 완성됐다. 극 중 애순이 아들의 미숙함을 정면으로 겪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고두심은 가슴에 박힌 절망을 찰나의 표정으로 온전히 표현한다. 절절한 감정이 스크린 밖으로 흐른다.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엄마는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아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하나 체크리스트를 완성해나간다. 그러나 채운다기보다는 비워내는 과정이다. 함께한 순간이 더 큰 공허함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먹먹하다.
후반부로 흐를수록 엄마의 입장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자식의 입장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애순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흐려지면서 인규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준비해 나가는지 집중한다. 소름 돋는 감동은 없지만 적당한 흐뭇함이 감돈다.
주목할 것은 김성균의 연기다. 김성균은 지적장애인의 연기를 일관성 있게 해낸다. 이전 작품에서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인데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초반의 마냥 순수한 모습부터 후반에서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감정을 고조시킨다.
배우들과 감독이 입을 모아 말했듯, ‘채비’는 착한 영화다. 인규의 엄마와 누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인규의 자립을 돕는다. 불편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직 선의만이 넘친다.
부모와 자식의 이별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순리라면, 주변 사람들의 선의는 지향해야 할 가치로 읽힌다. 장애인의 홀로서기에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품 속 훈훈한 묘사를 통해 역설된다.
펑펑 울 것을 예상해서 휴지를 챙겨갔다면, 사용할 일이 없어 그대로 들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쏙 빼놓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인물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별을 준비하다보면 어느 순간 엄마는 사라져있고 인규는 홀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엄마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엄마가 없음에도 평온한 일상은 오히려 엄마가 그토록 남겨주고 싶었던 세상의 일부다.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이별이라면 조금 더 따뜻하게, 아름답게 매듭짓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잔상에 남는 것은 고두심이 보여준 ‘엄마의 얼굴’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에서 시작해 만족감 넘치는 미소로 끝났다. 이별을 겪은, 겪어야 할 이들에게 필요한 과정이자 자세다. 오는 11월 9일 개봉.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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