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9일 치러진 미국 공화당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 등 경쟁자를 약 20%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일주일 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크루즈 후보에 뒤져 2위에 그친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뉴햄프셔 승리 후 대세론이 불면서 공화당 대선후보 자리는 트럼프의 차지가 됐다.
트럼프의 뉴햄프셔주 대승은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opioid)’를 잘 활용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오피오이드는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진통·마취제로 남용 문제로 미국 전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물질은 원래 말기 암 환자 수준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에게만 사용이 허용됐다. 하지만 옥시코돈·옥시콘틴 등의 상품명으로 관절통·치통처럼 심각하지 않은 통증에도 처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탓에 지난해 미국에서 5만여명이 오피오이드계 약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전체 약물 과다 사망자(6만4,000명)의 80%에 달한다. 특히 뉴햄프셔는 어느 주보다 진통제 과다 복용이 심각한 곳으로 꼽힌다. 주 교도소 재소자의 80~90%가 오피오이드 등 마약성 물질 중독자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트럼프는 이를 선거전략에 적절히 이용한 것 같다. 뉴햄프셔 유세 때마다 중독 문제 해결을 역설해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오피오이드 위기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으로 트럼프가 경합주인 뉴햄프셔에서 승리를 낚아챘다”고 보도했고 대선 후 트럼프 대통령이 “뉴햄프셔는 마약 소굴이며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이겼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오피오이드 효과’는 사실인 듯하다. 오피오이드 남용이 전염병처럼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가 “국가 전체의 결의가 필요하다”고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이게 미국만의 고민은 아니지 싶다. 지난해 국내 마약류 사범은 1만4,200여명으로 역대 최대다. 근래에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마약류와 환각 물질 거래가 급증세라니 경각심을 가질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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