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스포츠역사가인 카를 디엠은 베를린올림픽이 개최되기 한 해 전인 1935년 생각지도 않았던 대회조직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전임자였던 테오도르 레발트가 유대인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 덕분에 위원장이 된 디엠은 색다른 제의를 하나 내놓았다.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올림픽의 불’을 채화해 릴레이 방식으로 베를린까지 운반하자는 것이었다. 올림피아에서 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베를린까지 3,000㎞가 넘는 거리를 7개국에서 선발된 주자 1명당 1㎞씩 운반하는 방식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디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올림픽 성화 봉송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성화 봉송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성화가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지나갈 때 항의 소동이 있었다. 히틀러 정권에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은 성화 봉송 코스의 역순으로 점령해나갔다. 성화 봉송이 공격 루트를 답사하기 위한 독일군의 포석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후에도 성화 봉송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6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회에서는 대학생 9명이 나무와 깡통을 이용해 만든 가짜 성화를 봉송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는 나치에 의해 고안된 성화 봉송을 조롱하는 이벤트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중국의 티베트 유혈진압에 대한 항의시위로 터키와 영국 등에서 봉송 행사에 차질을 빚었고 봉송주자로 뽑혔던 해외 주요 인사들이 봉송을 거부하기도 했다.
‘지구촌 겨울축제’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밝힐 성화가 1일 우리나라에 도착해 전국 2,018㎞를 도는 101일간의 봉송행사에 들어갔다.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번 봉송은 7,500명의 주자가 나서 전국을 일주한 뒤 내년 2월9일 평창에서 올림픽 개막을 알리게 된다. 모쪼록 봉송행사가 무사히 마무리돼 인류의 평화와 우정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잘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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