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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스테이지] "반짝이는 한순간을 찾아 헤맨 두 명인…삶의 덧없음 그리고 싶었다"

<음악극 '적로'의 극작가 배삼식>

이왕직 아악부 슈퍼스타 김계선

진도아리랑 만든 박종기 삶 다뤄

음악극 ‘적로’의 배삼식 극작가/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누군가는 일제에 부역한 풍각쟁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의 전신)의 슈퍼스타 김계선 명인과 대금 산조의 창시자이자 진도아리랑을 만든 박종기 명인. 이들의 삶을 다룬 음악극 ‘적로’의 배삼식 극작가는 이 두 명인에 대해 ‘풀잎에 잠깐 맺혔다 사라지는 아침 이슬’에 비유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국악당에서 3일부터 펼쳐지는 ‘적로’의 대본을 쓴 배삼식 극작가를 서울경제신문이 만났다.

‘적로’는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배 작가는 그 중 ‘방울져 떨어지는 맑은 이슬’과 ‘혼이 서려 피리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강조했다. “소리, 음악이야말로 그 순간에만 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라는 그는 “마치 아침에 잠깐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우리의 인생도 잠깐 왔다 사라지는 것인데 한순간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서 한평생을 헤매기도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덧없음을 강조하는 이슬이란 의미의 ‘적로’를 제목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종기 명인이 돌아가시기 직전 공연에서 피를 토해 대금 끝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명인은 뒤돌아 앉아 핏방울을 감추며 공연을 끝낸 이후 쓰러졌다”며 “이 핏방울에서 붉을 적을 따와 ‘적로’라 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살다 보면 사실과는 살짝 다른 과장된 이야기가 있지 않겠나”라며 웃은 그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덧없는 삶 속에서 반짝였던 한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두 사람을 ‘한없이 허한 사람’이라 표현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감정의 밑바닥에 허함이 있다”고 설명한 그는 “박종기 명인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녹음실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불멸이 어쭙잖은 일이라는 점을 잘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들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제일 잘 이해한 셈”이라며 “당시 사회에서 이들은 밑바닥의 풍각쟁이인 셈인데, 그럼에도 자신의 소리 한가락에 감탄하고 울어주는 데에 감동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소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다 간 사람”이라 평했다.

그는 공자가 쓴 예기에 “마음이 입을 열어 말이 되고, 말로는 다하지 못하는 게 있어 길게 늘이고 곡조를 붙이면 노래가 되고, 그걸로도 부족해 몸을 움직이면 춤이 되며, 여기에 의상과 소품을 함께하면 악이 된다”는 악기란 구절을 인용했다. 음악이나 연극 그 자체가 잠깐 현실에서 떠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덧없음을 가장 치열하게 저항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극을 쓰며 중점을 뒀던 부분에 대해 “결국 음악과 말이 떨어진 것이 아닌 만큼 자연스럽게 음악과 대사가 전개되도록 하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작가는 인터뷰 내내 “이 작품은 전기적인 이야기,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위대한 음악가들에 대한 찬가 대신 평범하지만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던 보편적인 두 사람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가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 신념을 전파하고 가르치려 할 때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나기 시작한다”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갈 때, 반대쪽에 서서 균형추를 잡아주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인류사 속 가장 재앙스러운 순간을 만들어 낸 사람은 누구보다 옳은 사람이었다”며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의 위험성은 항상 느낀다”는 견해를 내놨다. “가장 순수하고 올바르고 정의감에 가득 차 있는 집단이 이슬람국가(IS) 아닌가”라 반문한 그는 “인간관계 속에는 이해보다 오해가 훨씬 많지만 판단을 잠깐 유보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 반성할 줄 안다는 점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음악가를 가장 사랑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보지 않고 그 순간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에요. 잡다한 우리의 계획과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놓이는 순간, 잠깐 잊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돈, 명예, 권력보다 아름답고 치열한 이 사람들을 말이에요. 편안하게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삼식 작가


배삼식 극작가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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