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 실시되는 이탈리아 총선의 전초전으로 관심을 모은 시칠리아 지방선거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전폭 지원한 우파 연합 후보가 제1야당 오성운동 후보를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당선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투표 다음날인 6일 개표가 80% 진행된 가운데, 우파 연합의 넬로 무수메치(62) 전 노동부 차관이 39.9%를 득표, 34.7%의 표를 얻은 오성운동 소속의 잔카를로 칸첼레리(42) 후보에 소폭 앞섰다.
무수메치 후보는 개표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1%포인트 차로 칸첼레리 후보에 초박빙 접전을 펼쳤으나, 개표가 진행될수록 득표율 격차를 벌리며 당선을 눈앞에 뒀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민주당 진영의 파브리치오 미카리(54) 후보는 18.6%의 표를 얻는 데 그쳐 당선권에서 이탈했다.
무수메치 전 차관은 전날 투표 직후 공영방송 RAI를 비롯한 이탈리아 방송사들이 발표한 출구조사에서도 오성운동 후보와의 접전 끝에 박빙 당선이 점쳐진 바 있다.
이로써 우파 진영은 5년 만에 시칠리아 주지사 자리를 탈환하게 됐다. 내년 총선의 ‘시험대’ 성격의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우파 진영은 지지율에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이르면 내년 3월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지지도를 미리 가늠해보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각 정당이 총력전을 펼쳤다.
시칠리아는 오랜 경제 침체, 높은 실업률, 아프리카발 난민 위기에 신음하는 이탈리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라 시칠리아 선거 결과는 내년 총선 결과와 상당히 흡사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마테오 살비니가 대표를 맡고 있는 극우정당 북부동맹(LN), 조르지아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당(FDI)이 손을 잡은 우파 연합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들이 시칠리아에 총출동해 무수메치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선거 직전에 펼친 유세에서 메시나 대교 등 시칠리아의 인프라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표심 공략에 발벗고 나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번 선거 국면에서 우파의 구심점으로서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며 주가가 급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살비니 대표와 멜로니 대표 역시 지난 4년 간 물밀듯이 유입된 난민의 최전선인 시칠리아에 퍼진 반난민 정서를 자극하며 지원 사격을 했다.
로마 루이스대학 정치학과의 조반니아 오르시나 교수는 AFP통신에 “이번 선거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여전히 건재하고, 우파가 다시 경쟁력을 찾았음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2009년 창당 이래 최초의 주지사 배출을 노리며 수 개월 전부터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를 중심으로 시칠리아에 각별히 공을 들여 온 오성운동은 간발의 차로 분루를 삼켰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수도 로마와 제4도시 토리노 시장직을 깜짝 석권한 오성운동은 이번 시칠리아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뒤 내년 총선까지 여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었으나, 우파 정당들의 연합 공세에 밀려 선거 운동 중반까지의 우위를 살리지 못했다. 오성운동은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을 내세우며 “실질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찌감치 참패를 인정한 민주당에는 당 대표인 마테오 렌치 전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등 후폭풍이 일 조짐이다. 2012년 시칠리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월 렌치 전 총리에 반기를 들고 민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꾸린 민주혁신당(MDP) 등 좌파 진영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며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주지사 자리를 빼앗겼다.
민주당 일각과 이탈리아 좌파의 주요 인사들은 중도 성향의 렌치 전 총리가 개혁을 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너무 우파에 가깝게 끌고 갔다며 불만을 표출해 왔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역대 최저인 46.8%에 그치는 등 유권자 약 460만 명 가운데 절반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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