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건네는 신수원 감독은 “‘유리정원’을 통해 ‘공존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이란 게 욕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유리정원’은 베스트셀러 소설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 그리고 슬픈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홀로 숲 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문근영)를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쓰는 무명작가(김태훈)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밝혀지게 되는 충격적인 비밀을 다뤘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다른 이들을 가해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이에 대한 죄책감도 잊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주인공 ‘재연’은 나무꾼이었던 아빠가 오래된 나무의 기둥을 자르는 바람에 자신에게 저주가 내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곳에서 재연은 나무와 어우러져 살고, 나무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격을 가진 존재처럼 여긴다.
“인간과 동물이 자신의 생존 때문에 다른 이들의 터전을 밟기도 하고, 본인이 욕망 때문에 남을 해치기도 하지 않나. 식물은 나뭇가지도 다른 방향으로 뻗어 공존을 모색한다. 또한 서로를 해치지 않고 물과 태양, 광합성만으로도 천 년을 산다.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도 생명을 얻는 나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년만의 스크린 복귀로 화제를 모은 문근영은 그 동안 본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완벽 변신했다. 신수원 감독은 작품을 함께한 배우 문근영에 대한 아낌없는 극찬을 전했다. 신수원 감독은 “문근영은 보여지는 이미지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배우”라며 배우로서 내면에 품고 있는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문근영이 맡은) 재연이라는 캐릭터는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거기에 딱 맞는 배우였다”며 문근영의 타고난 눈빛에 매료되어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과학도 재연과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쓰는 무명작가 지훈의 삶을 차곡 차곡 불러낸다. 감독은 지훈이란 인물을 통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한 소설가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감독은 결국 재연과 지훈은 직업만 다를 뿐 사회의 루저이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훈이 재연을 찾아간 것은 처음엔 동질감에서 비롯된 호감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소설을 쓰는 창작자였던 지훈이, 결국 여자의 인생을 훔치게 된다. 피해자로 있다가 가해자로 바뀌어 양쪽의 인물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기도 한다. 극단적인 인물 설정이라기 보단, 우리도 항상 나락에 떨어졌을 때 지훈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훈의 태도와 행동에서 조금씩은 우리가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걸 한번쯤은 생각했으면 한다. ”
지훈은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작은 울림을 일으킨다. 큰 사건이 일어난 후 숲 속에서 재연을 다시 만난 지훈과 재연이 손을 잡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는 순간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재연의 삶을 망가뜨린 지훈에게마저 “손이 참 따뜻하네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감독은 이를 두고 “결국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사과할 수 있는 것은 공존을 위한 작은 노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리정원’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공존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공존도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인간과 인간의 공존이 자연처럼 불가능한가? 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물론 우리 모두가 공존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를 말하고 싶었다.”
영화 ‘마돈나’로 2015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은 신수원 감독은 데뷔작 ‘레인보우’로 제23회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상을 수상, 단편영화 ‘순환선’으로 2012년 제65회 칸영화제 카날플뤼스상을 받았다. 확고한 주제의식과 뚝심 있는 추진력은 신 감독만의 장점.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연출력 역시 그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결국 ‘소통’이라고 말한 신 감독은 “감정싸움이 아니라 작품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벌어지는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유리정원’은 숲 속에서 찍는 장면이 많아 더욱 행복한 촬영장이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조명감독님이 해먹을 들고 다니셔서 밤 촬영 땐 해먹에 누워서 하늘을 봤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다. 살랑 살랑 흔들거리는 해먹에 15분만 누워있으면 내 몸 속으로 산소가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숲이 주는 뭔가가 분명 있더라. 스트레스를 받아도 숲 공기를 마시면 해소되는 게 왜 많은 이들이 숲을 가는지 알겠더라.”
“식사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밥차가 와서 숲에서 식사를 했는데, 숲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 그 때 풍경을 보면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1시간 동안 소풍 나온 느낌이랄까. 확실히 도시에서의 촬영보단 스트레스가 덜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영화 찍는 재미인가보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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