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른 손정의 회장의 표정은 시종일관 경직돼 있었다.”
7일 일본 경제주간 도요게이자이는 전날 소프트뱅크의 실적발표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손 회장이 공을 들여온 미국 자회사 스프린트와 T모바일 간 인수합병(M&A)이 지난 5일 끝내 결렬되면서 투자자들의 실망 속에 열린 결산 설명회에 참석한 손 회장은 M&A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20분을 할애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M&A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온 손 회장의 최근 성적은 초라하다. 2014년 합병 실패의 아픔을 딛고 재도전했던 스프린트·T모바일 M&A는 끝내 불발됐고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공동 조성한 100조원 규모의 비전펀드를 통해 추진해온 미국 공유자동차 업체 우버 투자건도 지지부진하다.
외신들은 손 회장이 미래 청사진에 집중한 나머지 과도하게 경영권에 집착하며 M&A 계약을 실패로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프린트·T모바일 간 M&A 협상이 결렬된 것 역시 협상 과정에서 스프린트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가 T모바일 대주주인 도이치텔레콤에 ‘단독 경영권’을 요구하면서 양사의 간극이 커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스프린트가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후 시장 점유율 3위에서 4위로 내려앉은 반면 T모바일은 최근 고객 수를 급속히 확대하는 ‘성장기’ 회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손 회장의 경영권 요구는 도이치텔레콤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과욕’이었다고 도요게이자이는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손 회장이 이처럼 무리하게 경영권을 요구한 것을 ‘미래 청사진’ 때문으로 분석했다. 스프린트·T모바일 합병의 1차 목표는 미 이동통신 업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버라이즌과 AT&T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미 위성통신 스타트업 ‘원웹’과 ARM, 이동통신 합병회사의 사업을 통합해 사물인터넷(IoT)을 선도하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손 회장의 노림수였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번스타인의 크리스 레인 애널리스트는 “손 회장은 이통사 합병안을 (IoT 사업을 위한) 전환점으로 봤던 것 같다”며 “이 때문에 경영권을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버 지분 인수가 지지부진한 것 역시 경영권을 두고 손 회장과 우버 이사회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소프트뱅크는 총 100억달러를 투입해 우버 지분 17~22%를 매입하는 대신 우버의 이사 수를 늘리고 신규 이사 2명의 선임권을 요구했다. 이는 중국·인도·동남아 차량공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디디추싱과 올라·그랩택시에 우버까지 합쳐 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야심 때문이었지만 CEO 중심의 기업문화가 정착된 우버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새 경영자’의 등장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동안의 대규모 M&A로 떠안은 부채는 막대한 이자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7회계연도 상반기(4월~9월)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35% 증가한 8,748억엔(약 8조 5,300억원)을 기록했음에도 금융 손익이 계상되는 순이익은 87% 감소한 1,026억엔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손 회장이 이통사 M&A 실패 이후 미국 2위 케이블 기업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일부 외신들은 이전 계약 실패에서 천천히 교훈을 얻으라며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투자에 의존해 성장해온 회사의 어쩔 수 없는 생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는 “투자회사의 ‘후퇴’는 주가 급락으로 수익이 크게 출렁이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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