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서는 외교적 성과가 분명하다.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전후해 탄도미사일 중량 제한 해제와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가 언급된 데 이어 이번 흐름은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도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무기들 역시 미국이 대외 판매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성사된다면 한국의 안보 능력 역시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기대와 달리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크게 세 가지 걸림돌이 있다. 먼저 소요 시간. 한국이 획득할 미국제 전략무기의 목록을 보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 소요가 불가피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그대로 있을까. 미국제 전략무기 구매의 전제조건이 무엇인가. 북핵 위기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인 귀결을 맞거나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 옵션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그 즉시 한국의 전략무기 구매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문제는 예산.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형 3축 체제 구축에 방위력 개선비가 우선 투입돼 웬만한 신규 사업은 동결되는 예산 여건에 비춰볼 때 전략무기를 구매할 예산 조달이 쉽지 않다. 미국 전략무기 구매에는 항목마다 조 단위의 예산이 들어가고 일단 도입된 장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세 번째는 한미 두 나라의 무기 획득 절차. 한두 푼이 아닌 고가의 무기 도입에는 소요 제기와 연구용역 등 타당성 검토에만 1~2년이 걸린다. 미국에서는 여당인 공화당마저 걸핏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의회가 전략무기 판매에 선뜻 동의해줄지도 의문이다.
기술적 난제도 있다. 도입 1순위라고 보도되는 E-8 조인트 스타스 지상작전 통제기는 고성능 레이더로 250㎞ 떨어진 600여개의 지상 표적을 동시에 추적·감시할 수 있으나 생산 라인이 멈춘 상태다. 미 공군도 17대만 운용해 중고 기체 구매도 여의치 않다. 기체도 1957년부터 1979년 사이 생산된 보잉-707 여객기가 원형이다. 일각에서는 B-737 기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조인트 스타스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개발비와 생산 라인 설치비까지 감안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원잠 도입도 마찬가지다. 국내 건조를 결심하고 지금 당장 착수해도 5~7년이 걸리기에 미국제 원잠 직도입이 거론되지만 미국이 해외에 원잠을 판매한 전례가 없다. 예비함대에서 보관하고 있는 LA급 공격형 잠수함의 초기 생산분을 직도입 또는 리스하는 방안도 실은 여의치 않다. 기술적으로 잠수함의 원자로를 재가동할 수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가능하더라도 비용이 치솟기 마련이다.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의 수직 발사관을 장착한 LA급 중기형은 오는 2019년부터 퇴역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일각에서는 LA급 후기형이나 미국이 신규 건조하고 있는 버지니아급 원잠 도입론이 퍼지고 있다. 판타지 영역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한국의 미국제 전략무기 획득’이라는 원칙적 합의에는 한미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셈법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안보를 중시하고 투자하는 진보 대통령, 트럼프는 대내적으로 세일즈에 탁월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빨리 처리돼도 임기 후에나 가능할 사안을 갖고 두 대통령은 대북 압박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실리를 챙긴 셈이다.
중요한 것은 씨앗을 가지고 어떻게 과실을 맺느냐에 있다.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 확충은 정치적 계산이나 여론몰이가 아니라 기획과 전략적인 사고에 기인해야 한다. 정작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략무기를 사는 마당에 전략적 사고는 보이지 않는다. 기회는 분명하지만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에 불과하다. 차분하고 냉철한 자세가 필요한 때다. 김칫국부터 들이켜지 말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