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강원도 현리 비행장. 육군 모 항공대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500MD 76-0001호의 퇴역식이 그것이다. 지난 1976년 8월20일 출고된 이 기체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항공기.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도 수작업으로 프로펠러 비행기를 제작해 각군에서 사용한 기록이 있으나 대량 생산돼 최일선에서 활약한 항공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고정익과 회전익을 통틀어 500MD 76-0001호가 최초의 국산 항공기다.
500MD 헬리콥터의 최대 특징은 작다는 점. 가격도 상대적으로 싸다. 1970년대 초반에 빈약한 경제력을 가지고 북한의 대규모 기갑전력에 맞서려는 고민이 잉태한 것이 바로 이 기종이다. 당초 군은 월남전에 참전하며 그 위력을 옆에서 지켜본 AH-1 코브라 공격헬기 도입을 원했지만 구매는 물론 유지할 돈도 없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작지만 기동성과 최소한의 무장 장착이 가능한 500MD 헬리콥터. 마침 미 육군의 경헬기 선정사업에서 탈락한 제작사 휴즈사는 한국에 낮은 가격을 제시, 대한항공이 조립생산을 맡게 됐다.
애초에 도입한 기종은 2.75인치 로켓과 기관총 장착이 전부였으나 한국 정부는 휴즈사에 300만달러의 연구개발비를 내고 토우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발사대 설치를 요구했다. 이래서 탄생한 게 500MD 디펜더. 토우 미사일을 최대 4발 실을 수 있는 런처 시스템 개발을 의뢰하며 정부는 차후 제3국이 500MD 디펜더를 수입할 경우 한국이 기술료를 챙길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이스라엘 등이 디펜더 기종을 수입하며 정부는 120만달러를 기술료 명목으로 챙겼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첨단기술과 관련해 기술료를 받은 최초의 케이스에 해당한다.
한국 육군은 500MD 헬리콥터를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280여대를 조립 생산, 납품해 아직도 200여대가 운용되고 있다. 소형이라 측면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높은 고도에서는 비행 성능이 떨어지는 이 기종 중에서도 노후화가 심한 기체는 이미 2012년부터 도태과정을 밟았으나 1호기의 퇴역은 의미가 깊다. 방산 1세대의 종언이자 새로운 항공전력 구축의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500MD 76-0001호기는 그동안 7,700시간 동안 비행하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대민 수해 피해복구 지원 등의 임무를 맡았다. 비행거리는 115만㎞. 지구를 29바퀴 돈 셈이다.
군은 500MD 헬리콥터를 점차적으로 퇴역시킬 계획이나 변수가 하나 남아 있다. 무인기 개조라는 옵션이 대기 중이다. 군은 개념 연구, 민간(대한항공)에서는 시제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이 타지 않고 개조 과정에서 주요 구성품을 경량화해 항속거리가 길어지고 무장도 원형보다 많이 적재할 수 있다고 한다.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보잉사의 기술제공 폭과 납품가격, 신뢰성 확보 등이 관건이다. 만약 개발에 성공하고 군이 채용할 경우 한국 육군은 세계 최초의 무인화 소형 헬기 운용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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