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진 감독의 ‘메소드’는 배우들의 이야기이자 그 배우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 메소드 ‘연기’라는 프레임에 비춰 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최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진행된 영화 ‘메소드’(감독 방은진, 제작 모베터필름)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방은진 감독은 “연기와 사랑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10년간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제일 많이 말했던 게 ‘감정이 네 안에 있을거라 착각하지 마’란 말이다. 감정이란 변덕스러워서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연기가 좋다고 해서 다시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 지속될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젠 사랑했는데 오늘 죽이고 싶다. 그게 사랑이다. 또 늘 달아나고 싶다가도 그걸 지키고 싶어한다. ”
방감독이 겪은 감정들은 ‘메소드’ 속 대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배우로서 맡은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하다 보면 어떤 모습이 진짜 자기 자신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며 “‘메소드’는 순간의 몰입으로 이뤄지는 메소드 연기라는 신기한 경험, 그 극적인 순간에 대해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2일 개봉한 영화 ‘메소드’는 메소드 배우 재하의 연기를 향한 진심과 아이돌 스타 영우의 완벽을 향한 열정이 만나 만들어내는 강렬한 스캔들을 담고 있다. 박성웅이 완벽한 무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메소드 배우 ‘재하’로, 윤승아가 재능 있는 아티스트이자 ‘재하’의 오랜 연인 ‘희원’으로, 오승훈이 연기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아이돌 스타 ‘영우’로 호흡을 맞췄다.
영화 ‘메소드’의 시작은 연극 ‘언체인’이었다. 방은진 감독은 12월 대학로 무대에 오를 연극 ‘언체인’의 연출을 제안 받았고, 거절하기 위해 의뢰를 한 제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감히 내가 연극 연출을? 이란 생각이 들어 거절하려고 만났다. 스스로 역량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다 ‘연극의 내용을 스크린 속 연극으로 가져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연기’라는 테마에 대해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작품을 발전시켜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언체인’이 두 남자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메소드’는 희원이란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와 좀 더 이야기 구조가 다르게 흘러간다.”
‘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 시켜 극중 인물과 동일시 되어 연기하는 기법’을 뜻하는 ‘메소드’. 영화 ‘메소드’는 ‘메소드’라는 연기 방식 때문에 파괴되는 관계를 담았다. 방감독은 연기 방식을 넘어 인물들이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관객의 공감도를 높이고 있다.
”사랑의 감정에 와 있는 순간이 있고 그 연기의 감정이 진심이긴 한데 그 순간의 감정이 매순간 진심일 수 있을까 궁금증을 갖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싶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랑이 변질되고 깨지는 모습, 오래된 연인이 이야기 등을 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방은진 작가 겸 감독이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은 재하, 영우, 희원에게 각각 ‘사랑’이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재하에게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열정’의 다른 이름이었고, 영우에게 사랑은 ‘소유’였다. 반면 희원에게 ‘사랑’은 ‘희생’과 같은 의미로 자리잡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이틀 만에 ‘하겠다‘며 의사표현을 해온 박성웅은 방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린 재하의 이미지와 닮아있었다. 마초적인 느낌의 배우로 연극 배우로 시작한 베테랑 배우이길 바랐던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준 것.
“박성웅 배우는 지금까지 한 유형적인 연기가 아니라 끌린 듯 했다. 재하는 굳건하게 자신만의 연기를 지켜온 사람이다. 그렇게 굳건한 사람은 조금만 흔들려서 굉장히 흔들릴 수 있다. 역시 베테랑답게 긴장과 흔들림을 유연하게 연기로 보여주더라.”
올해의 괴물 신예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대담하고 강렬한 열연으로 화제를 모은 오승훈은 2016년 레플리카 연극 ‘렛미인’에 캐스팅 되며 화려한 연기 신고식을 치른 신예이다. 대학로 연극 흥행 신화의 주역인 화제의 연극 ‘나쁜자석’ ‘엠. 버터플라이’에 캐스팅 되며 연극 무대에서 인정 받은 실력파이기도 하다. 또한 방 감독에게 ‘복덩이’로 인식될 정도로 패기와 열정이 뛰어나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준 배우라고 했다.
방감독은 오승훈이 분한 영우는 “저들에게 속하고 싶다. 재하를 알고 싶다. 내가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 가져야지 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소유의 사랑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영우는 연기를 하다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재하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재하는 ’연기였을 뿐‘이라는 말을 안긴다. 그 말에 영우는 ‘그 연기를 완벽하게 보여주리라’란 마음을 품게 된다. 그 순간엔 복수의 감정이 더 컸을 것 같다. 재하를 뭉개버리겠다는 마음이 들었을테니.”
“오승훈의 열정과 의지는 영우의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영우에게 재하는 충동적이고 순수한 열병 같은 사랑으로 다가왔다. 무대에서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스물 몇 살 나이에게 엄청난 공허함이 왔을거다. 태풍처럼 지나가는 사랑이랄까. 영화의 마지막이 2달 동안 이어질 연극의 첫무대이다. ’그렇게 연극은 시작되었다‘ 란 엔딩 자막을 넣을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아마추어스럽고 독립영화 같아 넣지 않았다.”
오래된 연인으로서 재하를 깊이 사랑하고 예술가로서 재하를 이해하는 인물 희원은 배신감과 이해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방 감독은 윤승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희원은 사랑하는 사람이 배역에 몰입하면서 겪는 고통이나 혼란을 지켜보면서도 예술가로서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한다. 희원이와 재하는 과거에도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경험들이 있다. 희원이 역시 화가로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가 있어서 저 배우의 세계를 존중할 수 있는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희원은 ‘사랑’이란 상대의 고통과 혼돈의 시간을 견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희생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에.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눈감아줘야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여인이다.”
‘메소드’는 채널CGV가 선보이는 오리지널 무비 프로젝트 ‘이매진 무비(YMAGINE MOVIE)’의 첫 번째 영화이다. 3억원이 들어간 저예산영화로 18회차 촬영으로 진행됐다. 촬영기간도 예산도 부족했지만 방감독은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실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는 해본 적도 없다. 첫 영화 ‘오로라 공주’(2005)도 제작비가 50억 가까이 됐다. ‘메소드’의 제작비는 불과 3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순수한 의도가 좋았다. 이런 집중적인 프로젝트를 통해서 신인 감독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했던 방식을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예산을 맞추기 위해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해야했다. 화면이 비어보인다거나 미술적인 퀄리티가 떨어지는 영화는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이야기 완결성을 위해, 또 작품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선 철저한 소신이 있다. 그 점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발로 뛰어야했다.”
그 동안 강렬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대한민국 대표 여성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방은진 감독. 1987년 연극 ’처제의 사생활‘로 데뷔 후 19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 뒤 고(故) 박철수 감독의 ’301 302‘(1995) 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2005년 개봉한 엄정화 주연의 스릴러 ’오로라 공주‘로 감독으로 나선 그는 ’용의자 X‘에 이어 ’집으로 가는 길‘까지 메가폰을 놓지 않았다. 2017년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 그의 고민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
“인생이 제가 목표한 대로 되지 않더라. 세상이 바뀌니 제가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도 되더라. 작은 바람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하고,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연출자가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역작을 낼 수 있는 감독이 되는 게 내 꿈일지도 모르겠다. 더 크게 본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란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현재 내게 얼마만큼의 인생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성공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와서 베풀고 가는 것 아닐까. 다시는 대학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제자들에게 나눠준다든지, 뭔가를 나누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점점 그런 생각이 커지고 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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