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정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는 데 4년 2개월이 걸렸지만 처음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시가 그 기간 동안 도계위를 9차례나 열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윤혁경(사진) 에이앤유디자인그룹건축사사무소 도시부문 사장은 최근 펴낸 ‘특별한 건축, 도시를 바꾸다’를 통해 정비계획 등에서 나타나는 서울시 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그의 쓴소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윤 사장이 바로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 그는 도시관리과장, 도시디자인과장 등 2009년까지 30년 넘게 서울시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담당했다.
윤 사장은 지난 2012년부터 반포주공1단지 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맡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및 건축위원회 심의 과정을 경험했다. 서초구 반포동의 반포주공1단지는 순수 공사비만 2조 6,000억원인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재건축사업으로 주목받았다. 의미가 각별할 만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윤 사장은 “참으로 험난한, 중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분노와 절망, 한 마디로 다시는 수행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고 표현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가 진행된 4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인허가권자인 서울시 및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100여 번 이상의 보고를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의사결정을 해야 할 담당자들이 바뀔 때마다 종전에 검토하고 협의한 내용을 깡그리 부정해 버리는 것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경험한 중대한 문제점들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자문 교수, 공공건축가들의 개입으로 절차가 지연된 일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와 조율을 거쳐 건물 최고 높이를 45층으로 정해 2015년 4월 박원순 시장에게 보고했지만 서울시의 일부 자문 교수들이 한강, 관악산 조망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또 서울시가 지정한 한 공공건축가는 단지 내 모든 세대를 복도로 연결하고, 세대 평면을 1베이, 2베이로 구성한 비현실적인 설계안을 들고와 이 같은 방안이 추진됐으나 결국 전문가 토론회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나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반포주공1단지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도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 등 여러 절차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신중히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윤 사장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그는 “당사자인 신청인(시민)의 입장에서는 결정이 미뤄질 때마다 입는 정신적, 재산적 피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불필요한 절차는 줄이고 제 때 결정을 내려 심의가 지나치게 지연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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