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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 신형 국제관계와 미·중의 동상이몽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서경 펠로

미국이 양자관계 집착하는 동안

자유무역·개방정책 제시한 중국

21세기판 천하체계 복귀한 셈

韓 '창의적 다자주의' 제시할 때





축제는 끝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문화의 심장 자금성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톈안먼광장을 비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내줬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중국 특유의 하오커에서 중국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리고 양국 정상은 “미중 관계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양국이 직면한 도전은 제한적이지만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며 앞으로 양국의 우의는 해가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곧이어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와 공정무역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보호무역 조치를 오는 2020년까지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자유무역의 취지가 보다 약화된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하는 선에서 겨우 절충점을 찾았지만 이것은 미중 간 새로운 경쟁과 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고편이었다.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은 유독 ‘새로운 시대’를 강조했다. 중국은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역사적 시작점’으로 평가했고 향후 중국 외교의 목표를 신형 국제 관계 구축에 뒀다. 그동안 중국은 ‘강대국과의 외교’와 ‘강대국으로서의 외교’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신형 대국 관계로 ‘개발도상국의 대국’ 위상을 고수해왔다. 따라서 ‘충돌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으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 공영한다’는 신형 대국 외교의 원칙은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존중하겠지만 미국도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달라는 다분히 수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신형 국제 관계로 중국도 새로운 국제질서의 판을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2021년 창당 100주년과 2049년 건국 100년이라는 ‘두 개의 백 년’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출사표였다. 우선 힘의 열세를 인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할 일을 찾겠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라는 외교 담론을 선택했다. 이것은 향후 중국이 미국과의 담론 경쟁과 제도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규칙 제정자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아가 국제사회의 중국 위협론을 의식해 중국 모델은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존의 주장을 거둬들이고 개발도상국들이 참고하게 하겠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특히 미국이 주권적 의무(sovereign obligation)를 요구하는 세계질서 2.0의 시대를 역진하고 강자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양자 관계에 집착하는 동안 중국은 자유무역과 전면적 개방정책으로 중국식 세계화를 통해 미국과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외교정책을 담아낼 공동체 구상도 제시했다. 그동안 중국은 자국이 주도할 수 있는 다자협력체제에 관심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주변외교업무회의에서 이웃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이를 아시아 운명 공동체로 발전시킨 데 이어 중국공산당 19차 대회에서는 신안보관·의리관·신문명관으로 무장한 인류 운명 공동체를 제시했다. 이것은 묵자의 공리주의 입장에서 명분과 손에 잡히는 이익을 공유하는 한편 각국의 주권을 보장하는 개방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21세기판 천하체계가 국제무대로 복귀한 셈이다.

이러한 미중 관계의 성격이 변하면서 한반도 정세도 다시 출렁이고 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경쟁적으로 주목하고 있지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외교가 동맹에 편승하거나 ‘사안별 선택적 지지’라는 낭만적 접근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상관성을 만들 전략적 지혜와 다자주의를 창의적으로 제시할 때가 됐다. 동북아에 묶인 외교적 활로를 뚫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에서 신남방정책을 선보인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 다변화도 결국 미중이 날카롭게 포진한 한반도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우회로라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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