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 주재 대사관 및 영사관의 보안업무 중 일부를 옛 소련 정보기관인 KGB 출신이 세운 회사에 맡겨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최근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영사관 등의 보안업무를 ‘엘리트시큐리티홀딩스’라는 러시아 회사와 280만달러(약 31억원)에 계약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 미국대사관과 영사관의 직접 경비는 미 해병대 요원들이 맡지만 방문자 점검 등의 업무는 엘리트시큐리티가 담당하게 된다.
엘리트시큐리티는 옛 소련 시절 러시아 정보기관인 KGB 출신 빅토르 G 부다노프가 공동 설립한 회사다. 부다노프는 지난 1960년대 KGB에 들어간 뒤 이중스파이를 적발해내고 미국 등 해외 정보기관에 스파이를 심는 임무를 맡았던 인물로 전해진다. 82세의 고령인 부다노프는 현재 지분을 보유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 디미트리가 이 회사의 모스크바 본부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누출 우려에도 계약한 이유
러 정부, 외교인력 감원 추진 나서
인력 수급 부족 美 궁여지책 용역
미국 정부가 보안누출 우려에도 KGB 출신이 설립한 회사에 보안업무를 맡긴 것은 러시아 정부의 외교인력 지침 때문이다. 7월 미 의회가 러시아 추가 제재법안을 통과시키자 곧바로 러시아 정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측 외교인력 중 755명을 줄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미 국무부 역시 8월 말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워싱턴 대사관 상무부, 뉴욕 총영사관 영사부 등 미국 내 러시아 외교공관 3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하며 맞불을 놓았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 간 외교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인력이 부족해진 미국 정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러시아 측 회사와 용역계약을 한 것이다.
KGB 출신인 미하일 류비모프는 “워싱턴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중앙정보국(CIA)과 연계돼 있는 미국 회사에 보안업무를 맡기지 않는다”며 “나라면 러시아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미국 외교·안보 실무진은 상시적 위협 속에서 업무를 이행하고 있다”며 “이번 계약으로 그런 위협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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