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정부의 고강도 대책에 잔뜩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대책 이후 가장 확연한 변화는 거래 위축이다. 지난 8월 1만4,775건(신고일 기준)이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월 8,367건으로 줄었다. 10월 3,749건과 비교하면 4분의1 수준이다. 아직 정부의 공식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일선 중개업소들은 최근 상황은 거래절벽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래가 위축되면서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는 가격 하락세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가격 하락은 대규모 입주가 잇따르고 있는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등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 기류가 이상하다. ‘수요 감소→거래 위축→가격 하락’이라는 공식을 일반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8·2대책 발표 후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특히 강남권 집값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가격 상승 폭이 커지는 추세다. 수도권 외곽 지역과는 온도 차가 확연하다.
8·2대책을 되짚어보면 거래 감소는 충분히 예견됐다. 강남권 재건축만 해도 조합원 지위를 사고파는 것 자체를 금지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시장은 정부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매물이 안 팔리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집주인들은 매물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거래의 발목을 잡기는 했지만 가격에 관한 한 서울은 여전히 대책의 무풍지대다.
서울 집값 강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일단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탓에 인위적 규제만으로는 가격을 잡지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내년 4월 양도소득세 중과세 시행 이전에 집을 처분하는 대신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오르는 세금만큼 이를 집값에 선(先)반영하려는 보상 심리가 작용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어떤 해석이든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다. 정작 잡자고 한 것은 강남권 집값인데 오히려 시장의 충격은 투기와는 거리가 먼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취약한 외곽 부동산 시장에 더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자칫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결과적으로는 시장의 양극화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집값 양극화는 단순히 가격 격차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계층 간 사다리가 부동산 시장에서도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주택시장에서 서울 진입 장벽은 그리 높지 않았다. 강남이야 논외로 하더라도 웬만한 서울 시내 집값은 적정 수준의 은행 돈만 빌리면 수도권의 집을 팔고 갈아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8·2대책 이후에는 외곽 지역 집값이 정체 내지 하락하는 동안 서울 집값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오히려 주변부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심권 일부 단지는 전용 59㎡짜리 소형아파트 값이 10억원에 육박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직장 출퇴근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서울 시계(市界)를 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아우성마저 들린다. 설상가상으로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서울 입성은 더욱 버거워졌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중도금 대출한도마저 옥죄면서 대출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에게 은행 문턱은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진 탓이다.
가수요·투기수요가 주택거래 시장을 왜곡하고 과도한 가계부채가 경제를 위협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책이 시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집값을 잡아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목표에만 매달리다 계층 간 사다리까지 치워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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