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피곤했다. 열흘간 추석 연휴가 있어 편안할 줄 알았는데 외국으로 휴가를 다녀온 이들은 여독이 풀리지 않아 피곤했고 국내에 남아 있던 이들은 공동화(空洞化)한 도심에서 장사가 안 돼 힘들었다. 지자체들도 돈 있는 관광객들을 외국으로 빼앗겨서 허탈했다. 이번 이례적 연휴에서 우리는 휴일이 길어지면 관광객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돈이 말라붙는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그래서 하루 이틀 짧은 여행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중용(中庸)의 여행 코스를 찾아봤다. 마침 한국관광공사가 기획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중부내륙의 힐링여행이 눈에 띄었다. 특히 서울에서 두 시간거리의 충주·제천은 힐링여행의 적지(適地)다. 가벼운 산책길과 한방의술이 특화된 치유센터, 그리고 산과 호수, 리조트가 있는 힐링 코스를 다녀왔다.
충청북도 충주에 사람(人)과 자연(山)을 조화시킨 선(仙)의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스페이스SEON(www.spaceseon.com)’이다. 귀촌한 이들이 운영하는 마을공동체인 이곳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기치 아래 일체의 화학제품을 배제하는 식생활·디톡스·명상·플라워테라피 체험을 하고 있다. 동물농장에서는 말·소·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무공해 양초·비누·향수 등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충주시 소태면 솔무정길 35-1.
충주를 가로지르는 남한강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싶다면 비내길과 비내섬을 둘러볼 만하다.
이 트레킹코스의 시작점은 앙성온천광장이다. 비내길은 두 가지 코스가 있다. 1코스는 양지말산을 중심으로 조대와 강변을 걷는 7㎞ 구간으로 두 시간이 소요된다. 2코스는 1코스에 새바지산 임도, 비내마을, 비내섬 구간을 더해 총연장 17㎞ 구간으로 4시간이 걸린다.
비내길은 코스 초입에 버티고 서 있는 벼슬바위 앞 대평교를 건너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이 일대는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해 계절에 따라 기러기·오리·원앙·두루미 등이 모여들어 날개를 쉬기도 한다. 윤방노 충주시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은 “재수가 좋으면 이곳에서 고니 구경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언제나 볼 수 있을 만큼 개체 수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는 조천리 강변에도 있다. 이곳에서는 비내섬과 남한강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 회장은 “비내섬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갈대가 워낙 무성해 ‘비(베어)내는 섬’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다리를 건너 섬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말대로 갈대밭이 펼쳐졌는데 갈대보다는 억새 군락이 훨씬 조밀했다. 짧아진 가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억새 사이를 뚫고 비치는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양성면 새바지길 17.
영혼의 힐링을 위해서라면 배론산을 빼놓을 수 없다. 배론성지의 이름은 인근의 주론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발 903m 주론산(舟論山)의 ‘주’ 자(字)는 ‘배 주(舟)’다. 능선이 성지의 양쪽으로 흐르는 까닭에 이곳이 배의 밑바닥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론성지는 천주교 교회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이 성지 한 편에 있는 토굴에서 백서(帛書)를 썼고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1821∼1861) 신부의 묘가 있으며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주차장에는 전국 곳곳의 성당에서 몰려든 버스와 그 버스에서 토해 낸 수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넘쳐 났다.
배론성지는 원래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숨어들어 항아리를 쌓아둔 뜰 뒤편의 토굴에 숨어 백서를 작성하다 발각된 곳이다. 토굴 안에는 지금도 백서의 사본이 걸려 있다.
배론성지는 1958년 원주교구에 속하게 됐고 이후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 일원을 정리하고 단장했다.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는 토굴과 옛 모습대로 재현한 신학교 등이 복원돼 있다.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한옥 누각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피정의 집, 조각공원, 문화영성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손꼽히는 천주교 성지답게 단풍철이 지난 늦가을 풍경조차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글·사진(충주·제천)=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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