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부패 혐의로 구금 중인 왕족과 기업인들에게 보유재산을 내놓는 조건으로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저유가 장기화로 타격을 받은 국고를 채우고 기업 경영권까지 국가 산하로 흡수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체제를 굳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 정부가 구금 중인 왕족 및 기업인들에게 석방 대가로 자산 헌납을 요구했으며 일부는 이미 당국에 돈을 전달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몇몇은 보유자산의 70% 납부를 강요받았으며 기업인 사이에서는 “핵심사업의 소유권까지 강탈당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내부 관계자는 사우디 정부가 이번 부패사정으로 최소 1,000억달러(약 109조7,500억원)의 수입을 얻을 계획이며 목표치는 3,000억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우디 정부의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체포된 왕자 중에는 ‘사우디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가 포함돼 있다. 그의 재산은 170억달러로 이의 70%를 헌납한다면 무려 126억달러가 국고로 환수된다. 그 밖에 구금 대상에는 사우디 위성 TV채널 알아라비야를 소유한 왈리드 알이브라힘, 사우디 건설회사인 빈라덴그룹 회장 바크르 빈라덴 등 재력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여기에 반부패위원회가 자금 확보를 위해 추가 체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T는 사우디 정부의 ‘석방 대가 요구’ 역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 정부는 반부패 명목으로 확보한 자금을 저유가 장기화로 발생한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할 예정이지만 최소 목표액인 1,000억달러만 채워도 지난해 재정적자(790억달러) 규모를 웃돌게 된다. 사우디 정부는 남은 자금을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개혁 추진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현지의 소문대로 사우디 정부가 주요 기업 경영권까지 흡수할 경우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재계까지 움직이는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
구금된 왕족과 기업인들은 재산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지 여론은 빈 살만 왕세자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그는 앞으로도 반부패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사우디 대학교수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긴축의 고통을 모두 짊어져야 하느냐”며 “부자 역시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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