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고이케 지사의 ‘희망의 당 대표 50일’을 분석해 보도했다. 선거전 초반까지만 해도 민진당·일본유신회 등 야권을 결집시키며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희망의 당은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중의원 선거 결과 총 50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선거 목표였던 과반(233석)은 물론이고 선거전 의석(57석)에도 미치지 못한 참패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희망의 당에서는 ‘고이케 대표 사퇴’ 요구가 봇물 터지듯 제기됐다. 희망의 당 중의원 총회에 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고이케 지사는 ‘물러나라’는 강도 높은 주장에 내내 헛웃음만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사퇴 요구를 ‘의원들의 중언부언’ 수준으로 취급하면서 또 다른 파장이 일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고이케 지사의 돌풍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친 원인을 ‘배제의 정치’에서 찾았다.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이 ‘아베 1강 종식’을 위해 이념적 성향이 다른 희망의 당에 합류 의사를 타진했지만 고이케 지사는 “우리 정책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다”며 “(희망의 당과 정책 태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배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파 색채의 희석과 ‘노조와 관계있는 정치인이 희망의 당에 들어온다면 선거 연대는 없다’는 일본유신회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아베 타도’를 위해 제1야당의 지위까지 내던진 민진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더구나 민진당 내에서는 ‘제거 목록’으로 불리는 살생부가 돌았다. 문서는 진위 불명이었지만 당시 민진당이 느끼는 당혹감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통한다. 결국 ‘배제의 정치’는 민진당 리버럴계를 중심으로 한 입헌민주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입헌민주당은 희망의 당을 밀어내고 제1야당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민당과 이념·정책적 차이를 부각하지 못한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자위대 헌법 명기 등의 개헌에 대해 희망의 당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희망의 당이 야당으로 선거전을 치르고 있음에도 고이케 지사는 8일 토론회에서 “(자민당과의) 대연정에 대해서는 선거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고이케 지사는 “대연정 가능성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연정’은 선거 종반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희망의 당과 자민당 간 차이가 없음을 부각하는 주된 논거로 사용됐다.
총리 후보로 나서지 않은 고이케 지사가 무책임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의원 총선거는 곧 총리를 뽑는 선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이케 지사는 도쿄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중의원 출마를 포기했다. 국회의원이 아니면 총리가 될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달려들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에서 져도 돌아갈 자리를 남겨둔 것으로 비치면서 책임감이 결여됐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물론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고이케 지사의 총선 불출마는 ‘도대체 아베의 대항마는 누구인가?’는 의문을 낳았다. 결국 희망의 당에서 총리는 나오지 않았다.
고이케 지사의 대표직 사퇴는 당장 한 사람의 운명이 아닌 당 전체의 명운을 가를 일이 됐다. 희망의 당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대부분의 의원들은 희망의 당이 자체 공천한 사람들이 아니라 민진당 출신 인사다. 하세가와 유키히로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희망의 당에 합류한 민진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희망의 당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들의 평가는 더욱 싸늘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이케 지사가 대표로 있던 50일 동안 희망의 당에서 부각된 것은 ‘카제다노미 정당’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정당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비아냥이다. 결국 희망의 당에는 희망은 없었으며 “고이케 극장은 끝났다”는 평가만 나오고 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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