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34년 출간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추리소설의 고전이다. 80여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영감을 불어넣은 이 작품을 ‘클래식’이 아닌 다른 말로 규정하긴 힘들다. 소설을 사랑한 팬들은 물론 원작의 영화화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다른 작품에 슬쩍슬쩍 인용되는 오마주의 형태가 아니라 크리스티의 치밀한 서사 전개를 온전히 시각화한 영상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기대 속에 지난 20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안타깝게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원작의 거대한 그림자에 지나치게 의존한 이 영화는 창조적 각색의 묘미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작품의 존재 이유를 부각하는 데 실패했다.
우선 런던행 열차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탐정이 추적하는 내러티브와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 반전의 타이밍 등은 소설과 거의 비슷하다. ‘사건 발생→탐정의 승객 대질 조사→탐정의 결론 공표’라는 큰 흐름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초반부에 자잘한 인물 스케치에 몰두하면서 내러티브의 핵심 동력인 살인 사건은 무려 40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지난 후에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이미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훤히 꿰고 있는 관객이라면 서스펜스를 극대화해야 할 탐정의 조사·추리 과정이 인물들의 대사로 허겁지겁 메워지고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인물 수를 줄이면 좋았겠으나 영화는 원작을 의식한 탓인지 13명이라는 용의자 숫자를 그대로 안고 가면서 오히려 단점을 부각하는 꼴이 됐다. 이런 허점 탓에 미국의 유력 비평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는 영화의 ‘신선도 지수’를 58%로 박하게 평가했다.
내용은 똑같이 유지하되 대다수 관객을 의식한 듯 결말의 톤과 분위기를 살짝 바꾼 것도 문제로 지적할 만하다. 원작이 위대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은 흥미진진한 서사 때문만은 아니다. ‘악인(惡人)을 사적 복수로 처단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철학적 물음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가족·친구를 잃은 피해자들이 원한에 사무쳐 살인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탐정의 복합적인 캐릭터가 원작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이 딜레마를 냉정하게 그리는 대신 사연 가득한 범인들에게 깊이 감정 이입하는 탐정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눈물을 짜내려 한다. 탐정이 “여기에 살인범은 없다. 치유가 필요한 이들이 있을 뿐이다”고 읊조릴 때, 오열하는 범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할 때 영화는 원작의 비범함으로부터 저 멀리 벗어난다. 복잡다단한 딜레마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뻔한 눈물과 감상주의다.
다만 영화는 연말 시즌의 블록버스터답게 관객들에게 신나는 볼거리를 보장한다. 원작에는 없는 액션 장면과 추격 시퀀스가 양념처럼 뿌려져 있고 잘 달리던 기차를 멈춰 세우는 폭설과 산사태도 화려한 스펙터클로 구현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만큼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진땀 나는 스토리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케네스 브래너와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미셸 파이퍼 등 초호화 출연진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연출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탐정을 연기한 배우이자 ‘토르: 천둥의 신’을 감독한 케네스 브래너가 맡았다. 29일 개봉.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20세기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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