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로 유명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박쥐다. 도시 문장(紋章)에 박쥐가 들어가듯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축구팀 로고에도 큰 박쥐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다.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 돌풍의 주인공이 바로 이 박쥐군단 발렌시아다. 2016-2017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 12위에 그쳤던 팀이 23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9승3무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리그 8연승은 구단 최초 기록. 선두 바르셀로나에 4점 뒤져 있고 3위 레알 마드리드에 6점 앞서 있다. 발렌시아가 낳은 스타 파블로 아이마르,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후안 마타 등에 열광했던 한국 팬들도 발렌시아의 재기 조짐에 반색하고 있다. 레알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던 이강인이 발렌시아 유소년팀 소속이기도 하다.
발렌시아는 프리메라리가 통산 6회 우승의 명문 구단. 지난 2004년 마지막 우승 뒤로도 단골로 3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사이 걷잡을 수 없는 재정 악화에 ‘선수 세일’이 불가피해지면서 구단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졌다. 급기야 2014년에는 싱가포르 사업가 피터 림에게 구단이 인수되는 큰 변화를 맞기도 했다. 피터 림 체제의 발렌시아는 3년 가까이 암흑기를 보냈다. 지난해 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명수비수 출신인 게리 네빌 감독의 발렌시아는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0대7로 지기도 했다. 올 초만 해도 홈구장 메스타야 인근 거리는 “림 고 홈(LIM GO HOME)”을 외치는 성난 팬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3년간의 암흑기는 부활을 계획하는 리빌딩의 시기이기도 했다.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틀이 잡힌 발렌시아는 바르셀로나(33골)에 이어 팀 득점 2위(32골)에 오를 만큼 화끈해졌다. 최근 두 시즌 동안 4명의 사령탑을 교체한 뒤 데려온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의 리더십 아래 젊은 ‘임대생’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발렌시아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서른두 살에 감독생활을 시작한 마르셀리노는 발렌시아가 10번째 팀이다. 최근 세비야와 비야레알을 거쳐 올 시즌 박쥐군단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4-4-2 전술을 안착시켜 빠르고 유기적인 컬러를 팀에 입혔다. 팀의 핵심은 모두 다른 팀에서 올 시즌 임대 이적해온 유망주들이다. 곤칼루 게데스(파리 생제르맹), 안드레아스 페레이라(맨유), 제프리 콘도그비아(인테르밀란·이상 미드필더), 헤이손 무리요(인테르밀란·수비수)가 그들이다. ‘증명’이 절실한 이 젊은 피들은 죽어가던 발렌시아에 생기를 돌게 했다. 피터 림 구단주는 조제 모리뉴 맨유 감독의 에이전트와 막역한 사이인데 이러한 인맥이 페레이라 영입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12골)에 이어 득점 2위를 달리는 시모네 차차(9골)도 지난 시즌 임대생으로 왔다가 올 시즌 완전 이적에 성공한 선수다.
레알 원정에서 2대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홈에서 0대0으로 비긴 발렌시아는 오는 27일 오전4시45분 바르셀로나를 메스타야로 불러들인다. 어쩌면 박쥐군단의 올 시즌 가장 큰 도전일 수 있다. 이 한판의 결과가 리그 전체 판도를 좌우할지도 모른다. 발렌시아는 골잡이 차차의 무릎 부상이 걱정이고 바르셀로나는 중앙수비수 헤라르드 피케의 경고누적 결장이 우려스럽다.
발렌시아의 전설이며 바르셀로나에서도 뛰었던 스트라이커 비야(뉴욕FC)는 “나는 마르셀리노를 감독 초임 시절부터 잘 안다. 그가 발렌시아와 계약했을 때 ‘당신이 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해줬는데 그대로 되고 있다”며 기뻐했다. 비야는 자신 있게 덧붙였다. “발렌시아는 시즌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잘해낼 겁니다. 한 번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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