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용기 도입 논란을 예고하며 2017년이 저물어간다. 특히 대통령 전용헬기 교체주기도 겹쳐 오는 2018년은 대통령 전용기와 헬기 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전용기는 현재 대한항공과 장기임차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임대만료 기간이 3년 남은 상태다. 만약 구매로 방향을 바꾼다면 항공기 구매와 획득에 들어가는 시간을 감안할 때 늦어도 내년 예산국회에서는 사업착수 예산 집행을 의결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간 상호불신과 대립구도로 상황은 극히 불투명하다. 국가 안보를 위한 주요 설비인 전용기 구입 또는 리스마저 정쟁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전용기, 국가 안보 위한 핵심 설비=대통령 전용기는 무기일까, 아닐까. 정답은 후자. 전용기는 어떤 공격무기도 탑재하지 않는다. 굳이 무기를 말한다면 미사일 회피 같은 방어무기만 제한적으로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전용기는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 설비로 손꼽힌다. 군 통수권자가 안전하게 이동하고 유사시에는 탑승한 채 군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각국의 대통령 전용 구매예산을 국방예산에 포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순방 정상외교 도중 포항 지진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각종 대처 지시를 내린 것도 전용기 안에서다. 통신설비가 완비된 대통령 전용기가 없었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상황 대처도 불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전용기의 의미는 더 크다. 단순 보고뿐 아니라 핵 전면전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다자 간 정상회담이 많아지면서 전용기 수요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에는 구매’ 논의 고개 들어=우리나라의 대통령 전용기는 보잉747-400.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를 빌려 쓰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대한항공과 5년 임차계약을 맺어 400석이 넘는 좌석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일반통신망과 위성통신망, 미사일 경보 및 방어장치를 장착했다. 2014년 계약 만료 시 박근혜 정부는 재계약을 통해 임차기간을 2020년 3월로 늘렸다. 5년간 임차료는 1,400억원 수준. 계약기간이 2년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용기 구매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열린 청와대에 대한 국회 운영위의 예산안 상정 전체회의에서 “입찰과 업체 선정 1년, 실제 제작에 2~3년 걸릴 것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구매할지 다시 임차할지 결론을 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안전 문제뿐 아니라 움직이는 사무실이기 때문”이라면서도 “중이 제 머리를 깎기 어렵다. 국회에서 한번 논의해주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거액의 예산을 쓰는 일에 앞장서기는 눈치 보이니 국회에서 결정해주면 따르겠다는 의미다.
◇정쟁으로 얼룩졌던 전용기 도입 논란=전용기 도입 논의는 이전에도 있었다. 본격화한 것은 2005년 말.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한산을 같이 오르면서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 비행기, 1985년 도입한 보잉737)는 일본과 중국에 간단하게 실무적으로 나들이하는 것 이상으로는 쓸 수 없다. 국내용이다. 미국에 가고, 유럽에 가고 멀리 정상외교를 하러 갈 경우에는 1호기로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새로 장만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적용되는 시기는 제 임기 중이 아니고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공군 1호기 보잉737은 기체가 오래된데다 항속거리가 짧고 탑승인원이 40명 안팎에 불과해 해외순방용으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런 이유로 멀리 나갈 경우 민항기를 빌린 전세기를 이용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뜻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바로 꺾였다. 한나라당은 “지금 정부가 다음 정부 대통령 전용기를 챙겨줄 만큼 한가하고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지 묻고 싶다”며 반대해 전용기 구입 의도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여야의 입장은 2년 반 만에 뒤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노무현 정부와 같은 논리를 펼쳤다. “현재 사용 중인 전용기가 상당히 노후하고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가의 위상에 비춰 볼 때 바꿔야 한다”며 “현재 무슨 기종으로, 어떤 규모로 할 것인가와 근거리와 원거리에 따라 전용기와 전세기를 사용할 경우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있다”고 밝힌 것. 이번에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반대했던 일을 사과하고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여야 합의가 이뤄졌으나 전용기 구매는 또다시 없던 일이 됐다. 환율이 올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졌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을 위해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의 전용기가 출입문 하단부 에어커버 장치 이상으로 인천공항에 긴급 회항하며 착륙 시 안전을 위해 서해상에서 항공유를 방출하는 아찔한 사고를 겪은 적도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2019년 예산안에 반영되게 하려면 여야가 또다시 마주앉아야 한다. 전용기 구매 3차전을 앞둔 셈이다.
◇헬기도 교체주기, 어느 때보다 비용 클 듯=여야의 논란은 보다 커질 수도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대상이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전용기뿐 아니라 전용헬기도 교체시한을 넘겼다. 예산 부담이 그만큼 크다. 둘째, 현실적으로 교체 요구가 높아졌다. 현재 임대 기종 자체가 단종된 노후기종이다. 보잉747-400은 보잉 점보 시리즈의 12번째 모델로 1988년부터 2005년까지 694대가 생산된 베스트셀러지만 운용비용이 비싸 급속한 도태과정을 밟고 있다. 여객기보다 화물기로 개조되고 있다.
B747-200을 개조한 전용기를 운용하던 미국은 최신형인 747-8로 기종 변경을 확정했다. 다만 비용을 줄이고 도입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러시아 항공사가 파산으로 주문을 취소한 기체를 쓸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전용기로 보잉747-400기 2대를 운용하는 일본은 이미 보잉777기 개조작업을 거의 마쳐 내년부터 새로운 전용기를 쓸 예정이다. 안승범 디펜스타임즈 대표는 “이전까지 나온 B747 시리즈는 각국 정상의 전용기로 널리 쓰였지만 대부분 기종 교체 중”이라며 “임대하더라도 새로운 기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환율과 구매조건·개조비용이 가격과 구매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통령 전용기의 역사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 첫 이용…한국은 이승만 C-47 수송기가 효시
전용기의 역사는 80년 남짓이다.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윌버 라이트와 잠시 비행기에 오른 적이 있으나 대통령이 업무를 위해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 시기는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벤트 대통령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속에 유사시 대통령의 탈출과 핵전쟁 지휘를 위해 각종 첨단시설을 전용기에 실으면서 ‘날아다니는 백악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각국 정상들도 국가 간 교류가 많아짐에 따라 전용기를 잇따라 도입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용기는 멕시코의 B747-8기종으로 기체 비용만도 6억달러 이상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용했던 C-47수송기가 전용기의 시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4년 서독 방문 때는 서독 정부가 루프트한자의 도쿄~프랑크푸르트 노선 항공기를 일등석을 비운 채 제공했다. 노스웨스트항공도 한국 정부에 전용기를 제공하던 단골 항공사. 다만 이 경우 일등석만 제공하고 나머지 일반석은 일반승객을 받았다. 요즘 개념의 전용기가 등장한 것은 1966년. 더글러스사 VC-54수송기를 도입하면서부터다. 1992년까지 사용된 이 기체는 강원도 강릉 통일안보공원에 전시돼 있다. 1985년에는 B737 제트여객기를 전용기로 처음 들여왔다. 이 기체는 지금도 공군이 운용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B-747 계열 여객기를 개조해 전용기로 사용하고 있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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