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회계 개혁’이 속전속결이다. 지난 9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 기폭제였다. 상장사가 6년 동안 자유롭게 회계법인과 감사 계약을 맺었다면 이후 3년 동안은 금융위원회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에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뀐 법의 핵심이다. 이후 금융위의 관련 TF는 핵심감사제, 표준감사시간제 등 후속대책을 쏟아냈다.
회계 투명성 제고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옳다고 ‘너무 나가는’ 건 금물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외국인 기관투자자 대상 간담회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투자자에게 외부감사인 지정 신청권 부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회계법인이 특정 기업에 적합한 감사인인지 기관투자자에게 고르라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 측은 ‘기관투자자가 감사인 판별도 하냐’며 우려했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는 “기관투자자가 투자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닌데 감사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지금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스튜어드십 코드)가 대폭 확대되는 상황이다. 한 손엔 의결권, 다른 손엔 감사인 지정권을 쥔 기관투자자가 기업 경영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한 논의가 됐는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은 국가가 감사인을 골라준다는 지정제 자체를 놓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당초 금융위가 강하게 주장했던 안은 상장사가 감사인 후보 3곳을 추려오면 금융위가 1곳을 지정하는 선택지정제였다. 자유수임제와 ‘국가 지정제’ 사이의 절충안이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바뀌면서 당국의 입장이 감사인 지정제로 급선회를 했다”고 말했다. 법이 이미 국회를 통과한 다음에야 당국은 상장사, 회계업계 등과 협의해 예외조항을 만들고 있다.
회계 투명성 제고는 금융정책 중 유일하게 브레이크가 없는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수 받을 수 있는 일일수록 힘을 빼고 차분하게 각계의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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