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앞둔 이탈리아 패션 기업 베네통의 창업자가 현장 복귀를 선언했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상품 회전율이 빠른 패션 브랜드)’과의 경쟁에 밀려 명성을 잃은 회사의 부활을 위해 노장 창업주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라 주목 받고 있다.
베네통의 창업주 가운데 한 명인 루치아노 베네통(사진·82)은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경영권을 내려놓은 지 약 10년 만에 돌아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8년 은퇴 당시 1억5,500만 유로의 자산을 남겨놨는데, 작년 기준으로 회사는 8,100만 유로의 적자 상태에 놓여 있다. 올해는 손실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복귀를 결정한 이유”라고 말했다.
루치아노 베네통은 1965년에 다른 형제들 3명과 함께 베네통을 창업한 후 원색을 이용한 강렬한 디자인과 파격적인 광고를 내세워 매년 1억벌 이상의 옷을 파는 굴지의 의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그가 2012년 경영권을 아들 알레산드로 베네통에게 넘기고 물러난 뒤 베네통은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등 패스트 패션 업체들의 강력한 도전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문 경영인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베네통은 2012년 밀라노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그는 “다른 업체들이 우리를 모방할 때 우리만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했다. 특히 최악의 패착으로 베네통의 출발점이자 상징인 스웨터 생산을 중단한 것을 꼽으며 “이는 수로에서 물을 제거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14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모아 스웨터 제작용 뜨개질 기계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거대 패션업체를 일군 바 있다. 이어 그는 위기 타개를 위해 일자리 감축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면서도 “사업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해 감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베네통의 직원 수는 7,328명으로 그가 은퇴하기 직전보다 2,000명 이상 줄어든 상태다.
한편 창업주의 복귀와 함께 베네통의 전성기를 이끈 광고 제작자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도 17년 만에 베네통으로 돌아왔다. 토스카니는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베네통의 광고캠페인 감독을 맡아 사회적 금기를 다룬 도발적인 광고로 주목을 끌며 베네통의 이름을 알렸다. 영국 가디언은 토스카니가 다문화주의를 다룬 베네통의 새 광고를 제작했다고 전하며 “그의 합류는 베네통이 손실을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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