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새해 예산안 ‘자동상정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법정 시한 내 처리가 불발되면서 예산안 정국이 다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야 3당은 일제히 “국회의 책무를 방기했다”고 사과하며 4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예산안 처리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공무원 증원 예산을 놓고 야당이 정부·여당의 대승적 양보 없이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오는 9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조차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여야가 막판 극적 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라톤 협상에도 빈손…4일 1차 마지노선=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휴일인 3일 오전부터 예산안 부대의견과 남은 감액 심사를 논의하기 위해 소소위를 열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회의를 마쳤다. 예결위는 4일 오전 다시 회의를 열어 실무 심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핵심 쟁점인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등에 대해 대타협이 이뤄질 때까지 감·증액 및 부대의견을 꼼꼼하게 보겠다”며 “정부에 재차 의견을 제출했고 정부에서는 그 의견을 정리해 다시 심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이날 공개회동 대신 물밑 협상을 이어가며 접점 찾기에 나섰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면 일괄 타결을 위한 공식 회담을 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4일 회동에서 극적인 합의를 이룬다면 바로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일을 예산안 처리의 1차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여론전을 펼치며 야당을 압박했다.
◇공무원 증원 등 3대 쟁점 합의 가능할까=여야는 현재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기금 조성, 법인세·소득세 인상 등 3대 쟁점 예산에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말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도 3대 쟁점에서의 입장 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먼저 공무원 증원의 경우 민주당은 야당의 계속되는 감원 압박에 정부안보다 1,500명 줄인 1만500명까지 양보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예년 증원 수준인 7,000명, 국민의당은 최대 9,000명 이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3일 “쟁점 사안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여당이 (공무원 증원규모로) 1만500명을 고수하면 협상을 못한다”며 여당의 양보를 촉구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여당의 1만500명안은 우리가 받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일자리 안정기금의 경우 민주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세금으로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직접 지원 형식은 막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신 기금 활용을 1년 한시적 시행으로 못 박거나 기금 금액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자고 주장한다. 국민의당은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간이과세 기준금액 상향 등 간접 지원으로 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법인세·소득세 인상에 대한 이견도 크다. 한국당은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구간 신설을 없애는 대신 과표 200억원 초과구간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3%로 올리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여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소득세 인상도 한국당이 정부 안을 받아들이되 시행시기를 1년 유예하자고 요구했지만 접점 찾기에 실패했다.
◇연내 극적 타결 안 되면 초유의 준예산 사태=이처럼 여야 3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4일 극적 타결을 이룰지 미지수다. 여야 간 합의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은데다 이미 법정 시한 내 처리가 무산된 만큼 본회의 일정이 예정된 7~8일이나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도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달 말 ‘원 포인트’ 국회를 열고 예산안 처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달 말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12월 임시국회 소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만약 연내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가 현실화된다. 이 경우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정부 운영을 위한 최소 경비만 편성하면서 정부의 중점 과제들은 올스톱된다. 다만 여야 모두 여론의 거센 역풍을 감안할 때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이를 의식한 듯 여야는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책임을 떠넘겼다. 민주당은 “새해 예산을 제때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의 목소리”라며 야당을 압박했고 한국당은 “나라 곳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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