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 나비

최승호 作





짐짝을 등에 지고 날거나, 헬리콥터처럼 짐짝을 매달고 날아가는 나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비는 바늘처럼 가벼운 몸 하나가 있을 뿐이다. 몸 하나가 전 재산이다. 그리고 무소속이다. 그래서 나비는 자유로운 영혼과 같다. 무소유(無所有)의 가벼움으로 그는 날아다닌다. 꽃들은 그의 주막이요, 나뭇잎은 비를 피할 그의 잠자리다. 그의 생은 훨훨 나는 춤이요, 춤이 끝남은 그의 죽음이다. 그는 늙어 죽으면서 바라는 것이 없다.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을 때에도 그는 자유롭다.

사실 나비는 영업사원이다. 그는 천 개의 거래처 주막을 드나든다. 한 주막에서 한 잔씩 잔술을 마신다. 술에 약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고치에서 깨자 배운 게 이 직업이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주막을 나서면 대낮에도 허공을 헛딛는다. 공짜 같지만 그의 어깨에 꽂혀 팔락이는 것은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다. 눈치 빠른 주모가 끈끈한 암술 카드 리더기에 쓱 긁는다. 결혼정보업체에 등록된 수꽃들의 유전자 정보를 잽싸게 읽는다. 나비는 대개 초과 근로로 인한 과로와 영업상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비는 겨울을 건너기 어렵지만 꽃들의 씨앗이 다시 눈을 틔우고, 우리가 내년에도 봄을 맞는 것은 그 덕분이다.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