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총학생회장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대학 운영에 대한 학생 참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학생의결권 확대 및 소수자 인권 강화를 적극 요구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서 것이다. 과거 기숙사비·등록금 인하 등 재정지원 요구에 그쳤던 총학생회 공약들이 학교 의사결정 참여와 인권 강화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촛불 정신’이 대학가로 확산되면서 학사행정에 대한 참여 의지가 커진 것이다.
이번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학생 의사결정권 확대’다. 홍익대 52대 총학생회 당선자는 등록금 심의, 학과 폐지 등 중대사항을 논의하는 이사회에 학생을 포함시키겠다며 ‘학생이사제’라는 파격 공약을 내걸었다. 선거운동본부 측은 “학생들이 평소 학교의 일방적 행정에 불만이 많았지만 매 안건 집단행동을 하긴 어려웠다”며 “주요 의제를 의사결정 단계부터 함께 논의하기 위해 학생 이사를 홍익대 이사회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50대 총학생회 후보자도 학생-교직원이 등록금·학과운영·폐지 등 주요 교육 안건을 시작 단계부터 논의하는 ‘학사제도협의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부 학생회는 대학본부가 추진 중인 정책에 직접 제동을 걸겠다고 공개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달 이화여대 50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는 대학본부가 중국 상하이에 건립하려 했던 ‘상하이 해외센터’ 설립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학교가 비(非)학위 수업을 위해 해외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화여대 국제교류처 측은 학생 반대에 부딪혀 “검토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공약에 ‘인권’도 중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총학생회장단들은 여성 생리공결제, 장애인 및 군인 수업권, 식이소수자(채식주의자 등) 생활권 보장을 주요 의제에 올렸다. 고려대 선본 측은 채식주의자를 위해 학식 성분 표시제 및 채식메뉴를 도입하고 여성 월경권을 위해 화장실에 무료 생리대를 비치하겠다고 밝혔다. 시청각 장애인에게는 필기도우미를 배치하고 보행 장애인을 위해서는 장애물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지난달 당선된 KAIST 32대 총학생회 당선자도 장애인·성소수자·여성·군인 학생 학습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학내 소수자위원회에 제출했다.
학교 결정에 전방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총학생회의 ‘광폭 행보’에 학교 구성원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화여대 재학생 윤모(22)씨는 “그전에는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생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며 “학내 민주화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홍익대 교수는 “교직원 입장에서 봤을 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도 많다”며 “총학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갈 게 아니라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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