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1931~2005)씨의 전 부인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4세.
이구씨의 9촌 조카인 이남주 전 성심여대 음악과 교수는 6일 “줄리아 리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며 “그가 생전에 한국에 묻히기를 바랐는데 입양한 딸이 화장한 뒤 유해를 태평양에 뿌렸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지난 1958년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사무실에서 이구씨와 만나 결혼했다. 이구씨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자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1897~1970)의 유일한 생육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렸다.
두 사람은 1963년 한국에 들어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나 줄리아 리가 엄격한 궁궐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파란 눈의 외국인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종친회가 이혼을 종용하면서 결국 부부는 갈라섰다.
이후 줄리아 리는 한국에서 ‘줄리아 숍’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하며 홀로 지내다 1995년 미국 하와이에 정착했다. 줄리아 리는 2000년 한국에 잠시 돌아와 그동안 간직해온 조선 왕가의 유물과 사진 450여점을 덕수궁박물관에 전달했고 이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 이구씨를 그리워한 줄리아 리는 전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이구씨가 2005년 7월16일 일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 서울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도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이 전 교수는 “지난해 10월 하와이에 가서 만났을 때만 해도 말도 알아듣고 의식이 있었다”며 “남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두 분이 재회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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