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첫 정기국회는 여야 할 것 없이 협치를 외치며 출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국정과제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내세운 여당은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집안싸움 하느라 국정 견제라는 본분을 망각했다. 법인세 인상안은 글로벌 인하 행진과 거꾸로 가는 역주행인데도 한국당이 표결에 불참하는 바람에 가결되고 말았다.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권력구조·선거구제 개편 추진과 호남 예산 증액을 고리로 여당과 밀실 짬짜미 논란 속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가운데 경제 활성화, 민생, 노동개혁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 인터넷은행의 은산 분리를 담은 은행법 등은 이렇다 할 논의조차 못한 채 국회 서랍 속에 처박혔다. 이들 법안은 하나같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위축된 내수시장을 살리는 정책을 법률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더구나 노동개혁 법안은 촌각을 다투는 사안임에도 국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안이 담긴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대폭 인상된 내년도 최저임금이 곧바로 다음달부터 적용된다. 오죽하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경제계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을까 싶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발등의 불이기는 마찬가지다. 국회는 이러고도 의원 보좌관을 늘린 데 이어 세비마저 기습 인상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정치권이 11일부터 곧바로 임시국회를 연다고 한다. 그나마 염치는 있는 모양이다. 미뤄진 법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한다니 다행이다. 정기국회에서 드러난 무책임과 무능이 되풀이된다면 직무유기를 넘어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일하는 국회로 유종의 미를 거둬 세비값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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