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내고 가슴 설레던 순간의 일이다. 교수님께 내 첫 책을 선물로 드렸는데, 나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교수님 연구실에 노크를 하는 것조차 정말 큰 도전이었다. 한 번도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이번에도 역시 좋은 반응은 아니겠구나’하는 예감은 적중했다. 하지만 내 생애 첫 책을 안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간신히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교수님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싸늘했다. 책장을 들춰보는 척도 안 하셨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수업시간에 정확히 나를 지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겨우 석사과정 마치고 감히 책을 내다니. 네가 도대체 뭘 안다고.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언어란 창이나 칼보다도 더 끔찍한 무기가 될 수 있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방비상태로 당한 수모이기에, 더 오랫동안 뼈아픈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평생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을 참혹한 흉터로 남을 ‘무기로서의 언어’가 있는가 하면,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즉각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선물로서의 언어’도 있다. 내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다정한 학생들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나에게 뭔가 긴히 부탁할 것이 있을 때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거는 내 동생의 “언니야!”라는 친근한 호칭, ‘선생님’이나 ‘작가님’이라는 공식적인 호칭이 아닌 ‘여울아’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부름. 이런 언어야말로 화려한 수사학 없이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게을러 가지고 도대체 커서 뭐가 될 거니?”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자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지만, “네가 무얼 하든, 네가 어디 있든, 엄마는 반드시 네 편이야”라는 고백은 자녀에게 세상 모든 역경을 기필코 이겨낼 최고의 용기를 선사해준다.
얼마 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어라이벌(Arrival)’을 보면서 ‘무기로서의 언어’와 ‘선물로서의 언어’의 결정적인 차이를 깨달았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계인들이 무려 12개국의 상공에 동시 출현하자 세계는 경악한다. 외계인이 어떤 제스처도 선보이지 않았을 때조차도 지구인들은 침공, 침입, 공격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루이스는 통역도 사전도 없는 상태에서 외계인에게 지구의 언어를 가르치고, 자신은 외계인의 언어를 배운다. 그 일차적 목적은 우선 “당신들은 무슨 목적으로 지구에 왔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외계인의 정확한 대답을 듣는 것이었다. “무기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외계인의 대답을 알아듣게 되자 전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언어의 복잡한 맥락을 항상 고려하는 루이스는 ‘무기’의 의미가 다의적이니 외계인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든 외계인이라는 ‘낯선 존재’를 ‘적대적 존재’로 바라보고 싶었던 전세계 지도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외계인을 박멸할 기회라 믿는다. 외계인의 언어로 꿈까지 꾸게 된 언어학자 루이스. 그녀는 언제 지구인들이 외계인들을 죽일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외계인이 말하는 ‘무기’는 인명살상을 일삼는 흉기가 아니라 ‘언어라는 선물’을 의미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외계생명체는 지극히 난해하고 복잡한 외계어를 지구인에 선물함으로써 먼 미래에 자신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외계인과 지구인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언어학자 사피어 워프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은 물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조차 바꾼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단지 ‘어떤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로 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정 어울리는 언어적 습관’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인터넷에 모세혈관처럼 속속들이 퍼진 심각한 악성댓글들, ‘나만 아니면 되지, 뭐’라는 복불복의 정서로 가득한 조직문화의 정글을 헤매다 보면, 우리의 언어 또한 ‘무기’나 ‘흉기’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나에게 독서란 언어와 지식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 속에서 끊임없이 ‘내 삶과 합체시킬 최고의 문장’을 찾는 과정의 기쁨이다. ‘무기로서의 언어’는 적대감이 없는 선량한 타인조차 ‘박멸의 대상’으로 만들고, ‘선물로서의 언어’는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결국 진심 어린 소통의 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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