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켓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국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묘한 시장이다. 월마트가 이마트에 밀려 철수하는가 하면 반대로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이라도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브랜드 파워만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토양과 가치관을 얼마만큼 잘 이해하고 마케팅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
한국 주류 시장을 살펴봐도 그렇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반면 한국적인 특성을 가미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주류 중에서도 특히 위스키 소비자들은 묘하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보다 한국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는 한국인의 위스키 음용 형태와도 관계가 있다.
위스키 종주국인 영국 사람들은 주로 위스키에 물 또는 얼음을 섞어 마신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 잔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며 위스키의 맛을 평가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추구하는 위스키 선택의 기준은 입안에서 느끼는 부드러움과 기분 좋은 목 넘김이다. 위스키의 부드러움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는 알코올 도수이고 다른 하나는 숙성 연수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글로벌 위스키 회사에 근무하며 ‘한국적’ 특성을 가미한 위스키 ‘그린자켓’을 만들어 낸 이유이다.
보통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 40도가 대부분으로 독한 술이다. 그런데 이런 독주는 한 번에 잔을 비우는 한국인의 주류 문화의 특성을 생각할 때 잘 맞지 않는다. 영국을 비롯한 다른 주요 위스키 소비국들과 달리 병 단위로 주문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음주 문화를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한국 소비자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저도 위스키의 맛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시각으로만 접근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산이 있는 저도 위스키 그린자켓’을 만들며 부드러운 맛과 함께 지키려 한 또 한 가지 가치는 바로 위스키 숙성 연수이다. 와인의 가치가 생산된 연도의 포도의 작황과 포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면 위스키의 가치는 숙성 연수가 몇 년이냐에 좌우된다.
그린자켓은 세계 1위 싱글몰트 위스키의 명가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역사에 한국적 저도 위스키라는 스토리를 가미해 성공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산이 표기된 저도 위스키 그린자켓 12년, 17년은 국내 업계에 그린 돌풍을 일으키며 중국·베트남 수출을 시작으로 동남아 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위스키 그린자켓이 언젠가 위스키 종주국 영국에서 당당히 글로벌 위스키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린자켓을 성공시킨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욕구와 소비 패턴에 맞는 상품이 한국적인 상품이며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아닐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