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다 청춘물’·‘장르물’의 성공, 시청률 효자 주말극
올해 KBS 드라마에 새롭게 떠오른 주요 키워드는 ‘사이다’, ‘청춘’, ‘장르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청자를 겨냥한 드라마 대다수가 성공을 거뒀다. 과거의 올드하고 진부한 색깔을 과감히 버리고 산뜻한 분위기를 시도한 것.
가장 먼저 호응을 얻은 작품은 ‘김과장’이었다. ‘드라마의 제왕’ 남궁민이 코믹 오피스물로 최고시청률 18.4%를 기록, 저력을 입증했다. 남궁민은 안티히어로 김성룡 역을 통해 대기업의 부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거침없는 언행으로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했다. 2PM 준호의 악역 변신이 돋보인 가운데, 남궁민과 준호의 앙숙케미가 뜻밖의 브로맨스로 사랑 받았다.
‘쌈, 마이웨이’는 KBS 드라마국에 가장 활기찬 기운을 몰고 왔다.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골 때리는 성장 로맨스를 담은 ‘쌈, 마이웨이’는 박서준과 김지원의 화끈하고 직설적인 캐릭터 변신, 안재홍과 송하윤의 6년차 현실커플 이야기로 코믹과 공감 모두를 챙겼고, 최고시청률 13.8%를 기록했다. 애라(김지원 분)표 애교 패러디가 지금까지도 유행인 것으로, ‘쌈, 마이웨이’가 올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입증한다.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은 청춘물임에도 타임슬립 설정에서 공감을 얻지 못해 ‘시청률 맨홀’에 빠졌고, 역대 최저치인 1.4%로 불명예를 안았다. 주인공 김재중의 원맨쇼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도 이후 청춘물이 모두 ‘웰메이드’로 평가 받으면서 KBS는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맨홀’과 ‘매드독’ 사이 ‘땜빵 드라마’로 투입된 ‘란제리 소녀시대’는 8부작임에도 1970년대 대구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을 레트로 감성으로 정겹게 전달했다. 우주소녀 보나, 채서진, 서영주, 이종현, 여회현, 도희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금토드라마에서 줄곧 청춘물이 돋보였는데, ‘최고의 한방’은 차태현이 라준모PD로 이름을 바꿔 ‘1박2일’ 출신 유호진PD와 예능드라마에 도전해 화제를 모았다. 그럼에도 인기가수 유현재(윤시윤 분)의 1994년과 2017년을 타임슬립하는 이야기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하고 평균시청률 4%대로 지지부진하게 끝났다. ‘최강 배달꾼’은 고경표와 채수빈이 짜장면 배달부의 애환 속에서 흙수저의 사랑과 성공을 ‘쌈, 마이웨이’처럼 통쾌하게 전달했다.
‘고백부부’는 결혼을 후회하던 부부가 1999년으로 타임슬립해 함께 대학생활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 과정으로 웃음과 감동을 자아냈다. 장나라와 손호준의 ‘짠내’ 나는 현실연기, 허정민, 한보름, 이이경, 조혜정의 유쾌한 케미가 드라마 마니아를 형성했다. 11시대 심야드라마임에도 ‘최강 배달꾼’과 함께 웰메이드로 평가 받고 7%대로 선전했다.
상반기 ‘추리의 여왕’이 생활밀착형 휴먼 추리극으로 성공을 거둔 후 KBS 드라마에 범죄추리물도 급부상했다. ‘추리의 여왕’은 주연 최강희, 권상우를 그대로 시즌 2가 내년 2월 방영을 확정지었으며, 올 하반기 이어진 법정추리극 ‘마녀의 법정’과 범죄수사극 ‘매드독’도 각각 14.3%, 9.7%의 시청률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마녀의 법정’은 정려원의 사이다 연기로 ‘인생캐릭터’ 경신,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에 일격을 가했다. ‘매드독’은 유지태와 우도환의 대결구도와 함께 보험범죄의 민낯을 고발했다.
꾸준히 사랑 받아 온 KBS 주말극은 올해 특히 시청률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36.2%, ‘아버지가 이상해’는 36.5%, ‘황금빛 내 인생’은 41.2%의 최고시청률을 자랑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이동건-조윤희 커플을 실제 부부로 탄생시켜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국민악녀’ 이유리의 정의로운 변신, 이준의 재평가를 낳았다. ‘황금빛 내 인생’은 회마다 예상치 못한 전개를 펼치며 신혜선의 연기에 물이 올랐다 평가 받았다.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고배를 마신 작품도 있다. 올해는 사극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서준, 고아라, 박형식, 서예지, 샤이니 민호, 방탄소년단 김태형(뷔)로 화려한 라인업을 구축한 ‘화랑’과 박민영, 연우진, 이동건 주연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예고한 ‘7일의 왕비’는 처음의 기대와 달리 점차 늘어지는 전개로 평균 7%대 시청률을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다. KBS의 명물 ‘학교’ 시리즈의 최신판 ‘학교 2017’도 이례적으로 관심 받지 못하고 평균 4%대 시청률로 아쉽게 종영했다.
12월에는 로맨틱코미디 ‘저글러스’, 판타지멜로 ‘흑기사’로 로맨스장르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KBS 드라마가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로 시청자들을 맞을지 기대케 한다.
◆ 파업 장기화에 예능국 ‘썰렁’, 김생민이 몰고 온 ‘훈풍’
2012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찬바람이 몰아쳤다. MBC와 함께 KBS가 지난 9월 4일부터 노조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대다수 예능이 줄줄이 결방했다. 주말 주요 예능인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1박2일)를 비롯해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살림남2’, ‘해피투게더3’,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대부분이 장기간 시청자들을 보지 못했다.
KBS 양측 노조가 언론계 적폐 청산과 불공정, 비자유보도 철폐, 현 경영진 퇴진을 주장한 이후 KBS노동조합(KBS 1노조)은 지난 10일부터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를 정상화했지만, 기자와 PD 직군 대부분이 소속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는 여전히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마지막까지도 주요 예능은 보기 힘을 전망이다.
파업이 있기 전, 상반기에는 특별히 올해 장수 프로그램들이 ‘레전드 특집’을 꾸몄다. ‘개그콘서트’는 900회, ‘해피투게더’는 500회, ‘불후의 명곡’은 300회 특집을 방송했다. 올해로 19년째인 ‘개그콘서트’는 900회 특집과 함께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과거 ‘개콘’ 출신 개그맨 김대희, 장동민, 강유미, 안상태, 신봉선, 박휘순, 박성광, 김지민이 6년 만의 ‘봉숭아 학당’ 부활과 함께 복귀했고, 후배들과의 코너로 시들해진 공개코미디의 부활을 꾀했다. 하지만 초반 화제 모으기 수준에서 그쳐 다시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분위기다.
500회 특집 이전, 재미의 방향을 잃고 위기설이 나온 ‘해피투게더3’는 ‘조동아리’ 멤버(지석진, 김용만, 김수용) 투입에도 불구, 시청자 반응을 크게 얻지 못한 채 파업과 함께 ‘정체성 찾기’ 고민에 빠졌다. 음악경연프로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꾸준히 세대를 넘어선 인기로 최근 13%를 넘어섰다. 동시간대 예능 ‘무한도전’을 제친 성적도 있어 앞으로도 장수 프로그램이 예상된다.
지난해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음원성적까지 화제를 모으자 올해 시즌2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김숙, 홍진경, 강예원, 한채영, 홍진영, 공민지, 전소미가 걸그룹에 도전했다. 전 시즌과 별다른 점 없는 도전기로 시즌1만큼 화제와 시청률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유부남 연예인들의 실생활과 진솔한 면모를 보여주는 ‘살림하는 남자들2’, ‘용띠클럽-철부지 브로망스’ 중 ‘살림남2’는 안정적인 시청률에도 장기 결방으로 하반기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용띠클럽’은 연예계 사모임 ‘용띠클럽’ 멤버 김종국, 장혁, 차태현, 홍경민, 홍경인이 여행 속 실제우정을 보여줬지만, 동시간대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 밀려 시청률 4.8%로 시작해 1.8%까지 떨어지며 굴욕을 안았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김생민의 ‘데뷔 25년 만의 전성기’와 함께 출발한 프로그램으로, KBS 예능 중 가장 단시간에 즉각적인 효과를 보였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코너에서 연예계 대표 짠돌이 김생민이 ‘경제자문위원’으로 활약한 후 TV판 ‘김생민의 영수증’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15분짜리 파일럿으로 8회만 방송했지만,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정규편성을 확정했다. 김생민이 일반인의 영수증을 분석해 재무상담과 소비전략 설계를 도와주면서 “스튜핏”, “그뤠잇”이라는 유행어를 날릴 때마다 시청자들은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시청률 4.8%를 기록했다.
제2의 ‘프로듀스 101’을 목표로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미 데뷔했지만 조명 받지 못한 가수들을 오디션으로 선발, 126명 중 국민 투표를 통해 최종 남녀 각 9명을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서바이벌 과정을 보여준다. KBS 예능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와 인력이 투입돼 방송국 내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대 세트 제작비만 9억 3000만 원, 뮤직비디오에 제작비에는 5억 원을 쏟아 부었다. 선발 과정, 편집, 투표 방식에서 ‘프듀’와 유사성을 보이지만 시청률 3%대로 아직은 그만한 파급력을 끼치지 못했다.
발레와 예능을 접목시킨 ‘발레교습소 백조클럽’은 추석 파일럿으로 잠깐 선보였다가 지난달 정규 편성됐다. 박주미, 오윤아, 김성은, 왕지원, 성소가 발레를 통해 소통하고 힐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직 화제와 시청률 두 측면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자 손연재를 여섯 번째 멤버로 투입했다.
올해 KBS 예능은 기존 장수프로그램조차 휘청거리는 마당에 ‘불후의 명곡’, ‘김생민의 영수증’ 정도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파업이 역대 최장기간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다시 예능국이 정상화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지 꾸준히 지켜봐야 하겠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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