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망하게 하는 것은 리더의 사리사욕과 아집이고 조직을 살리는 것은 리더의 공감 능력입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1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 미디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공감은 다양한 동물의 심성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속성이고 길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는 것”이라며 “세월호 사건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일련의 시간을 보내면서 타고난 인간 본성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는 교육과 사회구조,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리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초대 국립생태원 원장 임기를 마치고 교육 현장으로 복귀한 최 교수는 3년 2개월간 원장 재임 시절의 경험과 소회를 담아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미디어 펴냄)를 출간했다. 숱한 출판사들의 출간 제안에도 고사하던 그가 책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망하기도 힘든 조직인 공공기관이나 대학에 부임해 조직을 망가뜨리는 이들을 질책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렇게도 원하던 중책을 맡은 다음 처참하게 실패한 리더들에게 도대체 왜, 어떻게 했길래 망했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 때문에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에필로그에선 실제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등 두 전직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책에서 최 교수는 직접 주창한 경영 십계명과 함께 그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했다. 최 교수의 십계명은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 △가치와 목표는 철저히 공유하되 게임은 자유롭게 △소통은 삶의 업보다 △이를 악물고 듣는다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조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사하게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실수한 직원은 꾸짖지 않는다 △인사는 과학이다 등이다.
그는 자연에서 배운 상생과 공생의 가치를 경영에 접목하며 국립생태원 원장 시절 겸손과 배려의 아이콘이 됐다. 특히 2016년 5월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어린이에게 상을 주기 위해 무릎을 꿇은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그의 경영철학인 ‘여왕개미 통치철학’이 주목받기도 했다. 최 교수는 “사람들은 흔히 개미제국에서 여왕개미가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여왕개미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인력을 확보하는 번식만 담당하고 나머지 모든 일은 일개미들에게 위임한다”며 “사회를 유지하는 규범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관여하지 않는 여왕개미도 이 시대에 재조명해 볼만한 리더 유형”이라며 웃었다.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에겐 여전히 완수하지 못해 아쉬운 과제가 있다. “남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혼자 성과를 내기 보다는 함께 일하기를 좋아하는 직원에게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근무 성적 평정’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못한 일”이다. 최 교수는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이 조직에 악이 된다고 평가한 평가제도를 대부분의 조직이 유지하고 있다”며 “협업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무평가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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