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의 ‘풍향계’로 간주돼온 미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12일(현지시간) 더그 존스(63) 민주당 후보가 성추문에 휩싸인 로이 무어(70) 공화당 후보를 꺾고 승리를 거뒀다. 수십년간 요지부동의 공화당 텃밭이던 앨라배마 상원 의석을 민주당에 내준 이번 선거로 성추문 의혹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큰 정치적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 의회와의 공조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날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연방검사 출신인 존스 민주당 후보는 49.9%의 지지율로 무어 공화당 후보(48.4%)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존스 당선자는 “앨라배마인들이 잘못된 길을 택하기를 거부했다”며 “우리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미국에 보여준 날”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로 미 상원의원 의석 100석 중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51석, 49석을 나눠 갖게 돼 행정부의 정책 추진에도 역풍이 불가피해졌다.
제프 세션스 전 의원의 법무장관 이동으로 공석을 채우는 ‘형식적’ 차원의 선거가 25년 만에 앨라배마주 상원의석을 민주당에 내주는 대반전의 무대가 된 데는 무어 후보의 미성년 성추행 의혹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선거 직전까지 5%포인트 내외의 우위를 유지했던 무어 후보가 40여년 전 14세 소녀 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가운데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성추행 폭로 ‘미투(me too)’ 캠페인이 막판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은 패인을 ‘개인적 치부’로 돌렸지만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공화당의 최대 텃밭에서 패배하면서 공화당은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지난달 ‘미니 지방선거’로 불린 버지니아·뉴저지주지사 선거와 뉴욕시장 선거에서 완패한 데 이어 ‘텃밭 중의 텃밭’마저 내주면서 벌써부터 내년 중간선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이번 선거가 “단순한 보궐선거가 아닌 공화·민주 양당과 트럼프 행정부의 앞날에 지대한 함의를 주는 선거”였다고 의미를 두고 있다.
물론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의 약 3배인 25석을 사수해야 하는 입장으로 이 중 10석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던 지역구라는 점에서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도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실상 트럼프가 승리의 공신”이라며 애리조나·네바다·테네시 등 공화당이 다소 하락세를 보이는 지역에서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NYT도 이번 선거의 후폭풍으로 공화당 상원 노장들이 패배 가능성이 있는 선거에 재출마하는 대신 은퇴를 택하게 될 기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법인세 인하 등을 관철해낸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선거 패배로 만만찮은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트럼프’를 외쳐온 공화당 주류에 다시 힘이 실리며 오바마케어(건강보험법) 폐기와 반(反)이민정책, 멕시코 장벽 건설 등 주요 국정과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현실적으로도 공화당 상원 의석이 ‘턱걸이 과반’인 상태라 당내에서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다.
외신들은 “공화당이 거둔 유일한 성과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어 반대 여론에서 놓여났다는 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노선과 정책기조를 수정하라는 요구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평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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