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성 신인감독의 ‘범죄도시’의 흥행은 올해 영화계 최대 이변으로 꼽혔다. 순 제작비 25억원의 제작비로 만든 이준익 감독의 ‘박열’는 ‘동주’에 이어 거장의 저예산영화 시도라는 점에서 영화계를 흔들었다. 어렵게 데뷔 기회를 잡은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쟁쟁한 경쟁작을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충무로에서 재평가 받은 배우들도 의미 있는 활약을 보여줬다. 12월 연말엔 천만영화를 점치며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연달아 대작을 내놓는다. 올 한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작품들을 중심으로 올 한해 영화계를 짚어봤다.
◆ 흥행 기록 써 내려간 실화 영화들
올해 극장가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것은 단연 실화 소재의 작품들이다.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를 담은 영화 ‘재심’을 비롯해 2002년 국민참여경선, 지지율 2%의 꼴찌 ‘노무현’이 대선후보 1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영화 ‘노무현입니다, 1919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담은 ‘박열’, 1980년 5월의 광주를 세상에 알린 ‘김사복’ 택시운전사의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택시운전사’가 흥행 바톤을 이어 받았다.
‘박근혜 탄핵’으로 촛불이 뜨겁게 타올랐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던 영화 ‘재심’은 224만명을 동원하며 콘텐츠의 힘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실화라는 점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유시민, 안희정 충남지사 등을 포함한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39명의 인사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날 8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으며, 185만 관객을 울리며 올해 다큐멘터리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일제 강점기 아나키스트 ‘박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박열’은 일본 제국주의에 당당히 맞서 싸우던 독립운동가 박열(이제훈)과 그의 신념적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를 다루며 235만명을 동원했다. 특히 개봉 전부터 여러 이야깃거리로 화제가 됐던 ‘리얼’과는 달리 ‘박열’은 ‘리얼’의 1/5에 가까운 제작비로 5배 정도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순수히 영화의 힘으로 흥행을 달성해 더욱 의미가 깊다.
2017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가 관객 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해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로는 열다섯 번째로 천만 영화에 등극한 ‘택시운전사’는 정권 교체의 배경과 주연 배우 송강호의 힘과 맞물리며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역대 영화 중 최대의 흥행 성적표를 내 놓았다.
12월 극장가에도 실화 소재의 영화가 개봉을 준비 중이다. CJ가 선보이는 ‘1987’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택시운전사’와는 동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소재적인 측면에서 차별점을 이룬다. ‘1987’이 실화 소재 흥행작들을 뒤따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대작 영화 참패...중·소형 영화의 반란
‘리얼’, ‘브이아이피’ ‘군함도’ ‘남한산성’ 등이 예상보다 저조한 흥행 기록을 낸 가운데 반전의 영화들이 속출했다. 여름 성수기에는 ‘청년경찰’이 반전의 주인공이었다. 제작비 70억원을 쓰고 손익분기점(200만명)의 3배 가까운 563만 관객 동원이란 성적표를 받아든 ‘청년경찰’은 대작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란 강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위력을 발휘했다.
입소문 하나로 판도를 뒤집고 추석 연휴에 개봉한 ‘범죄도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현재까지 687만명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 ‘범죄도시’는 충무로 티켓 파워 배우를 캐스팅 하지 않고, 추석이라는 성수기에 ‘킹스맨: 골든 서클’과 ‘남한산성’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라 더욱 주목 받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현재를 휴먼코미디라는 장르에 담아낸 ‘아이 캔 스피크’(326만 명)의 흥행도 또 하나의 의미를 남겼다. 특히 데뷔 56년째를 맞이한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배우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인 옥분 역으로 분해 다양한 감정선을 소화하며 관객들을 웃기면서도 울리는 내공 깊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 결과 제1회 더서울어워즈, 제37회 한국영화편론가협회상, 제38회 청룡영화상, 제17회 디렉터스컷어워즈, 제4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그리고 제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까지 무려 6관왕을 차지하며 평단과 관객의 공통적인 호평을 이끌어냈다.
◆ 연말 극장가를 책임진다...웹툰 원작 영화
웹툰 원작의 영화들이 연말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OSMU(One-Source Multi-Use, 원소스 멀티유즈)대표 작품으론 제피가루의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를 영화화한 ‘반드시 잡는다’, 양우석 감독이 2011년부터 웹툰 ‘스틸레인’과 동시 기획한 영화 ‘강철비’, 주호민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신과함께’를 들 수 있다.
‘반드시 잡는다’에 비해 12월 개봉 예정인 ‘강철비’ ‘신과 함께’는 100억원대 큰 자본이 들어간 웹툰 원작 영화이다. ‘강철비’ 127억, ‘신과 함께’ 180억원이란 순제작비가 들어갔다.
NEW의 연말 기대작 ‘강철비’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남북한 핵전쟁 시나리오를 그린 첩보 액션물이다.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하고,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가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충격적인 전개와 압도적인 스케일로 그려냈다. 영화는 ‘변호인’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양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 판타지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는 1편과 2편이 함께 만들어진 까닭에 1편의 흥행에 따라 2편의 흥행 여부도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4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돼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대작들의 흥행 성적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신인감독들의 전성시대
신인감독들은 올해 날개를 달았다.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과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꾼’의 장창원 감독이 대표적이다.
여름과 추석 시즌에 각각 개봉한 ‘청년경찰’(565만명)과 ‘범죄도시’(687만명)는 같은 시기 개봉작 중 최약체로 꼽혔으나,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면서 신인감독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어 하반기에는 장창원 감독이 현빈 유지태 주연의 영화 ‘꾼’을 선보이며 현재 356만 관객을 동원 중이다.
이외에 5월 황금연휴에 258만명을 동원한 ‘보안관’의 김형주, 손익분기점(200만)을 넘어선 290만명을 끌어모으며 선전한 ‘프리즌’의 나현, ‘대장 김창수’의 이원태, ‘미옥’의 이안규, ‘7호실’의 이용승,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 등이 신인 감독란에 이름을 올렸다.
◆ 흥행으로 다시 한번 날아오른 배우들 ...마동석· 설경구· 진선규· 강하늘· 최희서
올해 충무로는 새로운 배우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안겨 준 한해였다. ‘범죄도시’ ‘부라더’ 로 흥행 2연타를 이어나간 마동석, 데뷔 12년 만에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첫 남우조연상을 받고 감격의 수상소감을 전하며 핫스타로 주목받은 ‘범죄도시’의 진선규, 제37회 영평상, 제54회 대종상, 제38회 청룡영화상 등 주요 영화제 시상식의 신인상을 휩쓸다시피 한 ‘박열’의 최희서는 올해의 발견이었다.
‘재심’부터 ‘청년경찰’, 그리고 ‘기억의 밤’까지 3연속 흥행을 기록중인 배우 강하늘도 올해 가장 효자 배우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올해의 배우로 설경구를 빼놓을 수 없다. ‘불한당’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살인자의 기억법’ 으로 손익분기점 220만명을 넘어 265만명 관객수를 동원한 설경구는 54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와 ‘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17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배우상’에 이어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4년 ‘나의 독재자’ 참패 이후, ‘서부전선’, ‘루시드 드림’등이 연이어 참패 하며 힘을 얻지 못했던 설경구는 올 한 해 ‘불한당’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영화의 열혈 팬인 일명 ‘불한당원’이라는 수많은 마니아층을 양산해내기도 했다. 이어 선 보인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흥행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 디렉터스컷 어워즈 시상식 현장에선 “오랜 방황 끝에 만난 영화가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는데 이렇게 상까지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간절하게 구하고 연기하겠다”며 감격 어린 소감을 밝혔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