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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10대 노동 착취하며 中企로 오라고?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현장실습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

회사는 벤처·이노비즈인증 받은

주위서 흔히 볼수 있는 중소기업

약자라며 더 약자에 이럴수 있나

행복경영 실천없인 중기시대 안와





지난 11월9일 고교생 신분으로 제주도의 한 중소기업 생수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민호군(18) 사건은 또다시 ‘어른’들에 의해 꽃다운 젊음이 스러진 비극이어서 매우 안타깝다.

6일 열린 고 이민호 군의 장례식에서 서귀포산업과학고 급우는 “더 이상 슬프지 않고 차갑지 않은 세상에서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면서 내 사랑하는 친구, 민호야 잘 가라.”는 고별사를 했다. 장례식 보도를 읽는 동안 가슴이 저미는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한동안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고 이후 특별 근로감독을 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해당 기업인 제이크리에이션에서 총 680건의 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한다. 안전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데다 현장실습생에게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일을 시키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 없이 야간·휴일 근로를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제이크리에이션은 2004년 3월 설립돼 비알코올음료를 만들어온 회사로 벤처기업과 이노비즈 인증도 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 직원수는 37명, 매출액은 118억원으로 기업현황만 보면 전형적인 중소제조업체다. 우리 주위에서, 취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중소기업인 제이크리에이션에서 벌어진 고교실습생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적합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순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겨냥해, 정부와 사회를 향해 ‘경제적·사회적 약자’이니 보호와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요구해왔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런 중소기업들이 더 약자인 현장실습을 나온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작업을 시킨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특성화고권리연합회에는 하루 10시간 이상, 심지어 20시간 가까이 중노동을 시키고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작업을 강요했다는 제보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따르면 고교 재학생의 현장실습은 하루 7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숨진 이군은 실제 11~12시간씩 일했다. 이군 뿐만 아니라 많은 현장실습 고교생들이 실습 외 노동과 목숨을 위협하는 근무환경,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우 등을 증언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고 안전설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작업에 내모는 것은 파렴치한 범법행위다.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임금을 떼먹고 갑질이나 성희롱을 하는 행태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노동 착취 근저에는 약자를 착취해 내 배를 불리고자 하는 인간의 ‘약탈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정글의 법칙’이 관통하는 야만의 시대에는 약육강식이 세상의 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는 강자의 횡포와 약탈을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제어하고 교육을 통해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켜왔다. 동시에 근로자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험난한 투쟁을 하며 노동법 등 지금의 보호장치들을 확충해왔다.

중소기업계는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고 이민호 군을 비롯해 현장실습이라는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실습 고교생들이 근로자로서의 권리도, 보호도 누리지 못한 채 현대판 농노처럼 부림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말이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유사 피해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력난을 해소해달라며 청년들이 나태해 중소기업에 오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비판해온 중소기업계는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중소기업이지만 임직원들에게 좋은 대우와 복리후생을 제공하며 입사경쟁률이 수백대1인 곳이 적지 않다. 창업 멤버 10여명에게 아파트를 사주거나 크리스마스 때 홀로 회사를 지키는 경비직원을 위해 회장 부부가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가는 사례들도 차고 넘친다. 반면 아직도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직원을 약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것과 같은 후진적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제는 단지 대기업의 갑질과 기울어진 운동장만 바로 잡으면 되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 스스로 ‘직원과 함께 가는’ 행복경영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삼가 고 이민호군의 명복을 빈다. s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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