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의 등장,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행정안전부의 가임 여성 지역별 분포도 배포 사건, 낙태죄 폐지 운동 등 최근 2년간 이어진 페미니즘 이슈 속에 숱하게 인용됐던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의 1991년 작 ‘백래시(Backlash)’가 26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출간된 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논픽션 부문)을 받은 걸작이자 25년간 미국에 영향을 미친 책 25권(2007년 USA투데이)에 꼽힌 고전치고는 때 늦은 상륙이다.
곧 있으면 30주년을 맞을 이 페미니즘 고전이 케케묵은 과거를 추억하게 하면 좋으련만 책 속의 수난사는 오늘의 한국을 거울처럼 비춘다. 저자가 말하는 반격(backlash)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고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불거진 여혐 논란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하는데 위협을 느낀 반격의 주자들은 평등이 실현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공포를 직조하고 유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프레임대로라면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행복은 양립 불가능하며 사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악이다. “동등한 교육은 여성을 노처녀로 만들고, 동등한 고용은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며, 동등한 권리는 여성을 나쁜 엄마로 만든다” 따위의 주장들은 지금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반(反) 페미니즘 담론이다.
2006년에 나온 출간 15주년 기념 서문에서 밝혔듯 저자가 더욱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정치와 미디어의 반격보다는 자본주의의 유혹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돈을 들여 외모를 꾸미지 않는) 선머슴, 결혼과 육아의 ‘의무’를 저버린 마녀는 반공주의 시대의 ‘빨갱이’처럼 무찌를 대상이 되고 만다. 문제는 이 같은 프레임에 반복 노출되다 보면 ‘페미니즘’이 여성 스스로에게 짐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결국 진짜 반격은 “그것이 사적인 색채를 띨 때, 한 여성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안에서 그녀의 관점을 버릴 때, 결국 그녀 역시 자발적으로 이 반격에 동참하게 될 때”다.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욕망으로부터, 페미니즘이 저출산과 저성장의 주범이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책에서 주로 분석한 1980년대보다 오히려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페미니즘이 충분해질 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3만7,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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